제남녘 들녘마다 연분홍 철쭉꽃이 만개하며 상쾌한 봄바람과 함께 산객들을 손짓한다. 지난해 일림산에 올랐을 때, 건너편 암산과 사자산을 바라보며 꽃시절에 꼭 다시 찾겠노라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흥과 보성의 경계로 발걸음을 옮겼다.
웅장한 암봉과 환상적인 철쭉 평전, 그리고 남해 득량만의 탁 트인 바다 풍광을 한 번에 품을 수 있는 제암산~사자산 연계 산행 기록과 코스 정보를 상세히 정리해 본다.
1. 보성·장흥 제암산~사자산 산행 핵심 정보 요약
| 구분 | 주요 내용 |
| 산명/위치 | 제암산(해발 807m) & 사자산(해발 668m) /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및 장흥군 안양면 경계 |
| 등산 코스 | 제암산 자연휴양림 주차장 ➔ 전망대 갈림길 ➔ 임금바위(제암산 정상) ➔ 곰재 ➔ 곰재평전(철쭉군락지) ➔ 사자산 미봉 ➔ 사자산 두봉(668m) ➔ 제암산 자연휴양림 (원점회귀) |
| 지명 유래 및 특징 | • 제암산(帝巖山): 정상의 거대한 임금바위를 향해 주변 바위들이 절을 하듯 엎드린 형상에서 유래 • 사자산(獅子山): 거대한 사자가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들고 일어서려는 형상 |
| 산행 난이도 및 특징 | • 난이도 중~상: 두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능선길로 체력 소모가 다소 발생 • 핵심 관전 포인트: 제암산 정상 거대 암봉, 키를 넘어서는 곰재평전 연분홍 철쭉 터널, 사자산 능선에서 바라보는 득량만 바다 조망 |
| 산행 팁 | 사자산 미봉에서 두봉까지는 왕복 2km(약 1시간~1시간 30분)가 추가되므로 시간과 체력을 고려하여 코스를 안배하는 것이 좋음 |
2. 등산로 갈림길에서 되새겨본 인생의 선택
산행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산길은 순탄한 길과 가파르고 거친 길, 두 갈래로 갈라졌다. '편안하게 올라갈 것인가, 조금 험하더라도 다이내믹한 길을 택할 것인가.' 보통 험준한 산길 뒤에는 그만큼 압도적인 비경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기에, 망설임 없이 경사가 있는 바윗길을 선택했다.
뒤따라오던 한 단체 산객 일행은 갈림길 앞에서 한참을 왈가왈부하더니 결국 편한 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100m쯤 올랐을까, 두 갈래 길은 이내 하나로 합쳐졌다. 이정표를 세운 이가 사람들의 심리와 선택의 순간을 은근히 시험하려 한 것은 아닌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때로는 탁월했고 때로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결국 그 모든 결과와 책임은 온전히 나 자신의 몫이다. 앞으로 걸어갈 수많은 길 위에서도 매 순간 지혜롭고 담대한 선택을 내릴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고요히 바랐다.
3. 하늘을 받친 거대한 솟은 임금바위와 제암산 정상
약 1시간 남짓 땀을 흘리며 오르자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거대한 암봉이 자태를 드러냈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곰재로 떨어져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을 품은 '임금바위'였다. 주변의 수려한 바위들이 정상을 향해 엎드려 경배하는 듯한 형상을 지녀 '임금 제(帝)' 자를 써서 제암산이라 불린다.
해발 807m 제암산의 진짜 정상석은 이 커다란 기둥 모양의 암봉 위에 놓여 있다. 정해진 계단이 없다 보니 산객들은 오롯이 앞사람이 발을 디딘 틈새와 바위 잡을 곳을 더듬어 아슬아슬하게 암벽을 기어올랐다.
위험을 경고하는 안내문이 무색하게, 가장 높은 곳에 올라 탁 트인 바람을 맞이하고자 하는 산객들의 열망은 식을 줄 몰랐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암벽 행렬을 바라보며, 차마 그 틈에 끼어들지 못하고 바위 밑에 자리를 잡은 채 시원한 산바람에 몸을 맡겼다.
4. 연분홍 철쭉 평전과 득량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정상 주변으로 점차 인파가 몰려들자 자리를 비워주고 다음 목적지인 사자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득히 보이는 사자산까지는 산등성이를 따라 여러 차례 오르내림을 반복해야 하지만, 오솔길처럼 부드러운 능선길이 길게 이어졌다.
곰재를 지나자 눈앞으로 수놓아진 연분홍빛 철쭉 평전이 아늑하게 펼쳐졌다. 성인 키보다 크게 자란 철쭉나무들이 화려한 꽃 터널을 이루어, 마치 요술을 부리듯 숲속으로 들어선 사람들을 품었다가 내놓기를 반복했다. 눈부신 햇살 아래, 저 멀리 푸른 남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뼛속까지 시원하게 스며들었다.
5. 사자산 능선을 넘어 마침내 닿은 두봉
동서로 400m가량 길게 능선을 늘어뜨린 사자산(668m)은 사자가 고개를 들고 요동치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사자산 미봉이었는데, 진짜 정상이라 할 수 있는 두봉까지는 능선을 따라 2km를 더 진행해야 했다.
눈으로는 가까워 보였으나 왕복 2시간 이상 소요되는 거리라 잠시 갈등이 생겼다. 일단 득량만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 명소에 자리를 잡고 김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나뭇잎을 간지럽히며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그림 같은 해안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짓눌렸던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새로운 힘이 솟구쳤다.
지친 무릎과 발가락을 토닥이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 끝에 마침내 사자산 두봉에 도달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와 맞이한 두봉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6. 아득히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두봉 끝에 서서 지나온 제암산 정상과 능선길을 돌아보니 거대한 산줄기가 아득하게 이어져 있었다. 제 힘으로 그 먼 길을 온전히 걸어왔다는 사실에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뿌듯함과 감동이 밀려왔다. 오직 산이 주는 기운과 호흡을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언젠가 우리네 인생길도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아득함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지나온 걸음들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추억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언제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남은 삶의 여정 역시 한층 더 감사하고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