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아침이면 늘 설렌다. 하지만 6월 8일 아침은 유난히 마음이 먼저 깨어났다.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떴고,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만날 풍경을 상상했다. 오랜만에 떠나는 2박 3일 여행의 첫 날이다. 선자령에서 시작해 동해안을 따라 청간정과 통일전망대, 건봉사, 하조대, 휴휴암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여행 가방을 챙기는 손길마저 가벼워진다.
남편도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여행을 오래 다니다 보니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설렘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 [평창 선자령] 산행 핵심 정보 요약
| 구분 | 주요 내용 |
| 위치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네비 검색: |
| 코스 안내 | 대관령휴게소➔국사성황사➔선자령정상➔양떼목장➔원점회귀 |
| 소요 시간 | 약 3시간 30분 ~ 4시간 (쉬는 시간 포함) |
| 난이도 | 쉬움 ~ 보통 (총 약 10.8km) / 능선길 위주로 등산 초보자도 무리 없음 |
| 주요 포인트 | 선자령 정상석 기념 사진 촬영 안개 속 거대한 풍력발전기 풍경 양떼목장 능선 산책로 코스 |
| 편의시설 | 대관령 휴게소 무료 주차장 및 화장실 이용 가능 |
| 산행 팁 | 바람이 강한 구간이 많으므로 방풍 자켓 필수 준비 우중 산행 시 미끄럼 방지 등산화 착용 권장 |
1. 안갯속으로 들어가다: 무릉도원을 닮은 숲길
선자령 입구인 대관령마을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산은 이미 짙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앞사람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일 만큼 자욱한 안개에 처음에는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오늘은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없겠구나.'
하지만 산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아쉬움은 금세 사라졌다. 안개는 풍경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를수록 세상은 고요해졌고, 나무도, 풀도, 바람도 모두 하얀 안갯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문득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눈으로 보는 풍경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풍경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내 알았다. 안갯속을 걷는 것은 마치 꿈속을 걷듯 신비로웠고, 걸음을 옮길수록 마음이 벅차올랐다.
안개가 잠시 비켜서는 듯해 사진을 찍으려 하면 금세 낯빛을 바꾸어 다시 안개 세상을 만들어 버렸다. 마치 산이 안개 숨바꼭질이라도 하자고 건네는 장난 같았다.
"산이 보인다! 어, 풍력발전기가 다시 사라졌네."
거듭 외치며 우리는 안개가 그려놓은 화려한 연출 대신 고요함 속으로, 탁 트인 전망 대신 상상의 여백 속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조망은 볼 수 없었지만, 안개의 마법에 걸린 선자령의 고요함은 가슴 깊이 남는다.
선자령 오르는 길, 남편과 나란히 걷는 발걸음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숨을 쉬며, 같은 속도로 걷는 시간 속에서 마음까지 하나가 됨을 느낀다.
2. 선자령 정상에서 나눈 따뜻한 커피 한 잔
국사성황사를 지나 마침내 해발 1,157m 선자령 정상에 도달했다. 반가움보다 차가운 대관령 바람이 먼저 맞아준다. 조금 전까지 안개만 가득하던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싸늘한 바람이 몸속을 파고들었지만,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 덕분에 추위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배낭에서 따뜻한 커피를 꺼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 모금 머금었다. 안개와 빗방울이 흩날리는 정상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보다 더 근사한 맛이 또 있을까.
원래는 선자령에 올라 멀리 동해바다까지 품어보고 싶었다. 끝없이 펼쳐진 너른 바다는 안갯속에 모습을 감추었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만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뜻하지 않은 안개의 출현은 그 자체로 멋진 선물이었다. 안개도, 바람도, 빗방울도 모두 여행이 건네는 특별한 조각들이었다.
3. 하산길, 비를 친구 삼아 만난 풍력발전기
정상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진다. 서둘러 우비를 꺼내 입자 빗소리가 온 숲을 가득 채웠다. 젖은 흙길에서는 생생한 흙냄새가 풍겨 오르고, 나뭇잎 끝마다 빗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우중산행의 작은 불편함마저 즐거움으로 변한다. 비를 피하는 대신 비를 친구 삼아 걸어가는 산길은 그 자체로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그때, 안개 사이로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풍차처럼 천천히 돌아가는 하얀 풍력발전기와 초록빛 초원, 그리고 몽환적인 안개가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걸음을 멈추고 그 아련한 풍경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4. 양떼목장 방향 하산과 선자령이 준 가르침
양떼목장 방향의 능선 길을 따라 원점회귀를 이어갔다. 6월의 선자령에서는 끝내 푸른 하늘도, 멀리 펼쳐진 조망도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고, 조용했기에 서로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여행은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한다는 것을 선자령이 나직하게 가르쳐주었다.
안개는 풍경을 가렸지만 행복까지 가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안개 덕분에 더 깊고 따뜻한 추억을 선물받았다. 대관령 선자령이 남겨준 마음의 여백은 시간이 흘러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