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2026

[예산 덕숭산] 📋 [1편] 충남여행 : 덕숭산 수덕사에서 정혜사 능인선원까지, 근대 선불교의 자취를 걷다

                                
                                    
                                     충남 예산시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삼층석탑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문화유산 답사가 유행하여 충남 예산의 수덕사와 덕숭산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어느덧 25년의 세월이 흘러 당시의 깊은 인상을 가슴에 품고 다시 예산으로 향했다.

이번 1박 2일 여정은 첫날 덕숭산 산행을 시작으로 서산 개심사를 들러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여장을 풀고, 이튿날 서산과 당진의 해안길을 둘러보는 코스다. 서해안고속도로와 서산영덕고속도로(고덕 IC)를 거쳐 수덕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확장된 주차장과 줄지어 선 상가의 규모가 대단하다. 봄꽃이 만개한 4월 하순이라 단체 관광객과 학생들로 입구가 활기찼다.

📌 덕숭산 산행 및 수덕사 탐방 핵심 정보 요약

구분상세 내용
위치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도립공원 내)
추천 코스수덕사주차장 ➔ 덕숭총림 ➔ 대웅전 ➔ 소림초당 ➔ 향운각(관음보살상) ➔ 정혜사 능인선원 ➔ 덕숭산 정상(495m) ➔ 만공탑 ➔ 수덕여관 ➔ 원점회귀
시간왕복 약 5km 내외 / 약 2시간 ~ 2시간 30분 (휴식 및 문화재 관람 시간 포함)
핵심 포인트국보 수덕사 대웅전, 수덕 도령과 덕숭 낭자 설화, 근대 선불교의 중심지 능인선원, 만공스님의 자취(소림초당, 관음상, 만공탑), 수덕여관

1. 수덕사: 백제 불교의 신비를 간직한 출발점

일주문을 들어서자 길가마다 작고 귀여운 야생화와 화사한 철쭉이 활짝 피어 있었다. 붉고 다채로운 봄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오르다 보니 경내 전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덕숭선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니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대웅전과 마당의 삼층석탑이 맞아주었다. 대웅전은 배흘림기둥 위에 맞배지붕을 올린 구조로, 화려한 단청 없이 단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목재 구도를 자랑한다. 석가탑과 유사한 구조의 삼층석탑은 옥개석 일부가 세월에 파손되었으나 절 마당의 규모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 수덕사의 역사와 창건 설화

역사적 가치: 백제 법왕 1년(599년) 지명법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건립된 목조건물로, 건립 연대가 확실히 밝혀진 국내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국보다. 국보 대웅전 외에도 보물인 노사나불괘불탱, 묘법연화경 등 다수의 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수덕 도령과 덕숭 낭자 설화: 옛날 홍주 마을의 '수덕 도령'이 건넛마을 '덕숭 낭자'에게 청혼하자, 낭자는 절을 지어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절을 완성한 후 낭자의 손을 잡으려 하자 낭자는 사라지고 손에 버선 한 쪽만 남았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던 낭자를 기려 절 이름을 수덕 도령의 이름을 딴 '수덕사', 산 이름을 낭자의 이름을 딴 '덕숭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2. 정혜사 능인선원: 한국 근대 선불교의 심장부

수덕사를 둘러본 후 왼쪽 산기슭의 가파른 돌계단 길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능선으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돌계단이 많아 다소 숨이 차지만, 갓 피어난 연두색 나뭇잎과 봄꽃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덕숭산 산길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왜색 불교에 맞서 한국 불교의 정체성과 선(禪) 사상을 수호한 만공스님의 자취가 깊게 서려 있다.


충남 예산시 덕숭산 관세음보살 입상

🏛️ 산행 중 마주치는 주요 명소

  • 소림초당: 만공스님의 수행처로, 굽은 자연 목재에 볏짚 이엉을 얹은 아담한 초가집이 숲속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 향운각과 관세음보살입상: 만공스님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자연 암벽을 깎아 만든 7m 높이의 거대 불상으로, 온화하고 자애로운 미소가 인상적이다.

  • 정혜사 능인선원: 수덕사의 산내 암자로 지명법사가 창건하고 1930년 만공스님이 중수했다. 한국 불교를 이끈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선방으로, 단정하게 정돈된 경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정상을 향한다.

  • 만공탑: 1947년 제자들이 만공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전통적인 부도 형태에서 벗어나 세 개의 팔각 기둥이 지구본 모양의 돌을 받치고 있는 현대적 조형미가 특징이다. 한편에는 만공스님의 친필인 '世界一花(세계일화: 온 세상이 한 송이 꽃)'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3. 덕숭산 정상과 경허·만공 스님의 깨달음


충남 예산시 덕숭산 정상


정혜사를 지나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능선길을 20여 분 걸으면 해발 495m의 덕숭산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석 주변은 잡목과 앙증맞은 철쭉꽃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건너편으로 내포 땅의 산들과 너른 들판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덕숭산은 산세가 아름다워 '호서의 금강산'이라 불리며,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이자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 한국 불교를 일으킨 경허와 만공 스님

덕숭산은 조선 말기 쇠락해 가던 불교의 선풍(禪風)을 다시 일으킨 경허스님과 그 맥을 이은 만공스님의 사상이 집약된 곳이다.

경허스님은 20대 후반 역병이 창궐하여 시체가 뒹구는 시골 마을을 지나며 "평생 경전을 공부했으나 생사의 두려움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구나"라 깨닫고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때 남긴 오도송은 다음과 같다.

경허스님 오도송 (悟道頌)

忽聞人語無鼻孔 (홀문인어무비공) - 홀연히 콧구멍이 없다는 소 소리를 듣고

頓覺三千是我家 (돈각삼천시아가) - 문득 깨닫고 보니 온 세상이 내 집이네

六月燕巖山下路 (유월연암산하로) -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野人無事太平歌 (야인무사태평가) - 일 끝낸 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4. 수덕여관의 추억과 하산길

정상에서 만공탑과 수덕사를 거쳐 내려오는 길에 옛 모습을 보존해 둔 수덕여관을 둘러보았다. 과거 수덕여관은 식사까지 겸할 수 있어 많은 답사객의 발길을 잡았던 정겹고 수더분한 장소였다. 옛 운치는 많이 희미해지고 건물 몇 채가 남아있을 뿐이지만, 25년 전 온 가족이 모여 맛깔스러운 산채정식을 먹었던 따뜻한 추억이 아슴푸레하게 스쳐 지나간다.

💡 여행을 마무리하며

25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다시 찾은 덕숭산과 수덕사는 옛 추억을 되새겨줌과 동시에 삶의 깊은 경계를 일깨워준다. 하산길, 만공스님이 남기신 법문 한 구절이 가슴속 깊은 울림을 준다.

남이 나에게 이롭게 하는 때나, 나를 칭찬할 때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는 때나, 편안하고 즐거운 때나, 내외 평판이 쇠잔할 때나, 남이 나를 기롱하는 때나, 고생스러울 때나 이러한 여러 가지 경계에 좋으나 좋지 않으나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경계를 배우며, 뿌듯한 기억을 품고 만리포를 향해 다음 여정을 시작한다.


[서산 여행] 봄날의 서산 개심사 여행: 왕벚꽃과 청벚꽃 피어난 백제 고찰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