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과 고흥 팔영산의 8봉 능선을 무사히 넘고 나자 산행에 대한 자신감이 한층 깊어졌다. 주말 산행지를 고민하던 중, 팔영산 암릉을 무리 없이 걸어낸 체력을 바탕으로 땅끝 달마산 암봉 능선 종주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찍 도시락과 과일, 음료를 챙겨 해남 달마산으로 향했다.
'남도의 금강'이라 불리는 달마산(해발 489m)은 지리산에서 비롯된 호남정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땅끝지맥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해남군 현산면, 북평면, 송지면 등 3개 면에 걸쳐 있으며, 두륜산과 대둔산의 산세를 이어 받아 현산이 머리, 북평이 등, 송지가 가슴에 해당하는 형상을 띤다. 병풍을 펼쳐놓은 듯 들쭉날쭉하게 치솟은 바위 공룡 능선과 서해·남해의 탁 트인 풍광을 동시에 품은 명산이다.
전남 해남의 대표 명산인 달마산의 암봉 종주 코스와 미황사, 도솔암을 잇는 실전 산행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본다.
1. 해남 달마산 산행 핵심 정보 요약
| 구분 | 주요 내용 |
| 산명/위치 | 달마산(해발 489m)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북평면·송지면 경계 |
| 등산 코스 | 미황사 ➔ 달마봉(불선봉 489m) ➔ 공룡능선 암봉 종주(5.9km) ➔ 도솔암 ➔ 도솔암 주차장 ➔ (택시 이동) ➔ 미황사 주차장 (원점회귀) |
| 지명 유래 및 역사 | 고려 고종 5년(1218년) 남송의 배가 들어와 "달마대사가 거처할 만한 산"이라 칭송했다는 기록에서 유래 삼황(三黃): 불상, 바위, 석양빛의 세 가지 노란빛이 아름답기로 유명함 |
| 산행 난이도 및 특징 | 난이도 상(거친 암릉 구간): 5.9km에 달하는 뾰족한 공룡 등줄기 능선을 오르내리는 코스, 체력 소모가 크고 네발 산행 구간이 많음 핵심 관전 포인트: 세월의 멋을 품은 미황사 대웅전, 달마봉 정상 조망, 깎아지른 절벽 위 암자 도솔암, 칠성각 |
| 원점회귀 | 도솔암 주차장에서 택시로 출발지 미황사 주차장으로 복귀 |
2. 세월의 묵은 흔적을 품은 천년고찰 미황사
산행의 출발점은 세 번 절하면 삼천 배의 공덕을 이룬다는 대웅전 천불 벽화로 유명한 미황사다. 장엄하게 솟은 달마산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자리 잡은 미황사는 천년고찰 특유의 정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단청이 벗겨져 세월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대웅전은 화장기 없이 담백하고 고결한 인상을 안겨주었다.신라 경덕왕 8년(749년) 의조화상이 창건한 미황사는 대웅전과 응진당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불교의 해로 유입설을 뒷받침하는 설화가 전해진다.
사적기에 따르면 인도에서 금인(金人)이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자리에 통교사를 지었고, 마지막으로 멈추어 선 자리에 미황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미(美)'를 가져오고 금인을 상징하는 '황(黃)' 자를 따서 미황사라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사찰 주변에 아련히 감돌았다.
3. 달마봉 정상에서 마주한 한 폭의 산수화
미황사 왼쪽 길을 따라 부드러운 산자락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시간 남짓 숨을 고르며 오르자 마침내 달마봉 정상 근처에 다다랐고, 먼저 오른 산객들이 토해내는 탄성이 정적을 깨뜨렸다.
달마봉(불선봉) 정상에 올라서자 초록 치마를 넓게 펼쳐놓은 듯한 산자락이 미황사를 포근히 품어 안고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 건너 청해진의 흔적이 아득하게 시야에 들어왔고, 발아래 들판에는 모내기를 마친 논들이 푸른빛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을 만큼 수려하고 압도적인 남도의 풍광이었다.
4. 공룡 등줄기를 닮은 5.9km 바위 능선의 스릴
달마봉을 지나 본격적으로 공룡 등줄기를 연상시키는 바위 능선길에 접어들었다. 도솔봉까지 길게 이어지는 5.9km 구간은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치솟은 암봉들이 저마다의 기괴한 형상을 자랑하며 절경을 이루었다.
능선 어디서나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건너다보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 굽이를 넘으면 또 다른 암봉이 막아서며 도솔봉은 까마득하게 멀어져 보였다.
일반 산객들의 발길이 뜸해지며 고요해진 능선 위에서, 날카로운 바윗길을 네 발로 기어오르고 앉은뱅이 걸음으로 조심조심 내리막을 가로질렀다. 절벽을 돌아 건너편 봉우리에 도달할 때마다 거센 산바람이 달려와 땀을 식혀주었다. 험준한 암릉이었지만 지루할 틈 없이 극적인 스릴과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5. 깎아지른 절벽 위 천상의 암자, 도솔암
거친 암봉 능선을 마침내 다 넘어섰다. 천 길 낭떠러지 암봉 사이에 기적처럼 들어앉은 도솔암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절벽을 병풍 삼아 위태로우면서도 단아하게 들어선 전각과, 척박한 암벽 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의 생명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흡사 지상이 아닌 천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도솔암 현판을 보고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른 산객들의 대화에 잠시 오지랖 넓게 관여하려다, 남편의 무언의 눈짓에 마음을 거두었다.
도솔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한가.
부질없는 집착과 분별심을 내려놓으라고 말해주는 듯한 장엄한 선경 앞에서 그저 가만히 두 눈과 마음을 비우고 풍경을 담아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도솔암 아래 절벽에 기대어 선 칠성각을 둘러본 뒤 주차장으로 하산했다. 하산 후 택시를 이용해 시작점인 미황사로 돌아가며 창밖으로 방금 넘어온 달마산의 거대한 암봉 능선을 올려다보았다. 5.9km의 암릉 구간이었지만, 험준함 때문인지 8km였던 월출산 종주 코스보다 훨씬 길고 밀도 높게 느껴졌다.
6. 산행을 마치며
달마봉을 넘어 땅끝마을 끝자락까지 온전히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험준하기로 유명한 달마산의 바위 능선을 무사히 완주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에서 뿌듯한 성취감이 차올랐다. 어느덧 거친 바윗길도 경쾌하게 헤쳐나가는 진정한 산꾼으로 한 걸음 더 성장했음을 실감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