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알람 소리에 반사적으로 알람을 끄고 10분 동안 단잠에 빠졌다. 5분이 더 지나 다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몸을 겨우 일으켰다. 나이가 듵면 제시간에 스스로들 눈을 뜨건만, 여전히 알람에 의존해 몸을 일으키는 나의 습관은 언제가 되어야 고쳐지려나 싶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든 탓으로 피곤이 밀려왔으나, 오랫동안 원했던 계룡산 산행을 위하여 달콤한 잠의 유혹을 뿌리쳤다.
오전 6시 20분, 해는 높이 떴고 세상은 환하게 밝았다. 일찍 서두르면 하루를 훨씬 길고 알차게 쓸 수 있기에 산행 날에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능선이 닭의 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국립공원 계룡산으로 향했다.
📌 계룡산 동학사~갑사 종주 코스 & 핵심 정보 요약
| 구분 | 주요 내용 |
| 위치 | 충남 공주시·계룡시·대전광역시 경계 / 닭 볏을 쓴 용의 형상을 한 4대 명산 |
| 산행 코스 | 동학사 주차장 ➔ 동학사 ➔ 남매탑(청량사지) ➔ 삼불봉(775m) ➔ 자연성능 ➔ 관음봉(816m) ➔ 연천봉(735m) ➔ 갑사 ➔ 갑사 주차장 |
| 시간 | 약 10.2km (산행 약 6시간 소요) 가파른 돌계단과 암릉(자연성능) 구간 포함 |
| 주요 포인트 | 남매탑: 스님과 호랑이가 맺어준 처녀의 남매 애틋한 전설이 서린 쌍탑 자연성능: 성벽처럼 이어진 1.6km 바위 능선으로 스릴 넘치는 암릉 구간 관음봉 & 연천봉: 계룡산 제2봉인 관음봉과 낙조로 유명한 연천봉 조망대 갑사: '하늘·땅·사람 중 으뜸'이라 불리는 천년고찰 |
| 대중교통 팁 | 340번 버스 탑승 ➔ 박정자 삼거리 하향 ➔ 107번 버스 환승 후 동학사 이동 박정자 삼거리는 300년 된 나무를 심은 박정자 할머니의 이름에서 유래함 |
신록 속 노부부의 온기와 남매탑의 전설
동학사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길게 늘어선 동학사 전각들을 지나 삼거리로 갔다. 갈림길 긴 의자에서 연록색 바람막이를 입은 할아버지가 수박을 한 입 베어 물고, 연분홍 옷을 입은 할머니에게 수박을 내밀며 함께 나눠 먹는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 물결 넘실대는 산속에서 신록의 청량함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던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산에 오르는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동학사에서 남매탑까지는 1.7km의 경사 높은 돌계단 길이다. 묵묵히 올라준 다리를 다독여주었다. 남매 탑은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인 옛 청량사 터에 있는 7층 석탑과 5층 석탑 2기를 말하는데 청량사지 쌍탑이라고도 한다. 남매 탑이라고 불린 데는 그만한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란다.
통일신라시대 한 스님이 토굴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와서 울부짖었다. 스님이 호랑이를 보니 목구멍에 큰 가시가 걸려있어 그것을 빼내어 주었더니 보답의 표시로 혼례를 치르고 하룻밤도 지나지 않은 처녀를 업어다 주었다.
스님은 수도승으로 남녀의 연을 맺을 수 없음에 처녀를 돌려보냈으나 처녀의 부모는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수 없는 딸과 부부의 예를 갖추어주기를 바랐다. 이에 스님은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 불도에 정진하다가 한날한시에 열반에 들자 두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이 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남매탑 상원암에서 숨을 돌린 뒤, 급경사 비탈을 30분 동안 끊임없이 올라 해발 775m 삼불봉에 섰다. 여름이 지척인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시원한 정상 바람으로 식혔다. 이어서 능선이 마치 자연 성벽처럼 이어진 1.6km의 '자연성능' 구간으로 향했다. 안전 난간을 잡고 아찔한 바위를 한 발 한 발 타며 스릴을 즐긴 끝에, 깎아지른 절벽 계단을 따라 계룡산 제2봉인 관음봉(816m)에 도달했다.
관음봉과 연천봉 조망, 그리고 겸손을 닮은 꽃
관음봉 정상에는 등산객을 배려한 전망대와 나무 데크가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산을 찾는 이들에게는 고마운 시설이지만, 한편으로는 산이 고통을 내색하지 못한 채 이 많은 인파를 다 받아내느라 애쓰고 있는 것 같아 만감이 교했다. 데크 끝자락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연천봉으로 향했다.
낙조로 유명한 연천봉(735m)에 서자 운무 사이로 강렬한 햇살이 몸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곳에서 둘러본 계룡산은 과연 닭의 볏을 쓴 용이 꿈틀거리며 뻗어나가는 장엄한 형상이었다. 연천봉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하산길인 갑사 방향 세 갈래 길로 내려섰다.
갑사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무릎이 시큰거릴 정도의 가파른 돌계단이 많았지만, 수북하게 나뭇잎이 쌓인 푹신한 흙길도 함께 펼쳐져 지친 발을 다독여 주었다. 하산길에 고개를 숙인 하얀 꽃을 보며 "왜 꽃이 아래를 보고 있을까?" 묻자 남편이 "겸손해서 그렇지"라고 대답해 소소한 웃음을 나누었다. 계곡물에 손을 가만히 담그자 뼛속까지 시린 차가움이 밀려오며 피로가 단번에 씻겨 나갔다.
천년고찰 갑사와 박정자 삼거리의 비밀
하늘과 땅, 사람 중 으뜸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갑사에 도달했다.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품은 사찰이지만, 하산길에 지쳐 발바닥 통증이 심했던 탓에 많은 구석을 둘러보지는 못했다. 관음전과 단정한 대웅전을 둘러보고 마당 한가운데 피어난 작은 연꽃에 시선을 맞춘 뒤 키 큰 나무들이 호위하는 삼나무 길을 지나 주차장에 다다랐다.
갑사 주차장에서 동학사로 돌아가는 대중교통편을 문의하니 340번 버스를 타고 '박정자 삼거리'에서 내려 동학사행 107번 버스로 환승하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제를 지낸다는 괴목단을 둘러보았다.
박정자 삼거리에서 내릴 때 동행한 지역 주민을 통해 '박정자'라는 이름의 유래도 알게 되었다. 마을에 있는 300년 된 나무를 옛날 박정자 할머니가 어릴 적 심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친근한 이야기였다. 약 5분 정도 이동해 107번 버스를 환승하고 마침내 출발지점 동학사 주차장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서랍 속 고이 간직했던 추억을 꺼내어본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계룡산의 자연성능 능선과 관음봉의 아찔한 풍경, 그리고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며 만났던 신록과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도 내 마음에 오색빛깔 운치로 깊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