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2026

[정읍 내장산] 가을 내장산 산행과 마음을 비우는 길 (내장사·까치봉·신선봉·문필대)


가을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물들기 시작하면 내장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기도 하지만,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한 단풍잎이 지천으로 펼쳐지는 산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단풍이 절정에 이르기 조금 이른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드문드문 예쁘게 물든 나뭇잎이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내장산으로 향했다.

행락철에는 인파가 물밀듯 밀려들어 들어가는 길이나 주차장에서 시간을 허비하기 십상이다. 이를 피하려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주말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예보대로 새벽 공기는 살을 후벼 파듯 차갑고 매워서 마치 이미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가을철 관광객과 등산객 몰림으로 차량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어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올라갔다. 일주문까지 순환버스가 운행 중이었으나 내장사까지 이어지는 평평한 길을 느긋하게 걷기로 했다. 계곡과 무성한 나무들을 보며 눈을 즐겁게 하고, 본격적인 등산 전 뻐근한 다리를 풀어주기에 안성맞춤인 길이다.



📌 내장산 산행 코스 & 핵심 정보 요약

구분주요 내용
위치 및 산행지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 국립공원 (내장사 ~ 까치봉 ~ 신선봉 ~ 문필대 ~ 연자봉)
산행 코스내장사 주차장 ➔ 내장사 ➔ 제2봉 까치봉(717m) ➔ 제1봉 신선봉(763m) ➔ 문필대 ➔ 연자봉 전망대 ➔ 하산
 시간 약 5시간 소요 / 까치봉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험한 암릉 구간이 많아 주의
주요 포인트

내장사 연못: 정혜루 앞 복을 비는 연못

까치봉과 신선봉: 내장산의 주요 봉우리로 탁 트인 조망 제공

문필대: 승려가 기도 후 문필가가 되었다는 전설이 담긴 바위

산행 팁단풍철 차량 통제로 입구 주차 후 도보 또는 순환버스 이용 필수 / 가뭄 시 먼지가 많이 나므로 마스크 및 충분한 수분 보충 준비

이른 아침, 말(言)과 생각에 대한 화두를 던지다

오르는 길에 최근 우울하다며 전화했던 친구와의 통화 내용을 남편에게 들려주었다. 2년간의 힘겨운 암 투병 끝에 더 이상 항암 치료를 진행할 수 없어 중단한 친구의 이야기였다. 치료를 멈추자마자 암세포가 전신에 퍼지고 황달까지 찾아와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친구는 "내 남편 같았으면 끄떡없이 잘 살았겠지만, 그 친구 남편은 유난히 서로를 아끼던 부부라 앞으로 어찌 살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정색하며 한마디를 거들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부정적인 가정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한번 들은 말은 기억 한구석에 자리 잡아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므로 죽음, 실패, 좌절, 시기 같은 부정적인 언어는 입에 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산에 오르는 이른 아침, 말과 생각에 관한 소중한 화두 하나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날이 가물어서인지 바짝 틀어진 나뭇잎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수분을 머금지 못해 말라버린 잎들은 색이 선명하지 못하고 탁했다. 화려한 선홍빛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매끄럽게 반겨줄 거라 기대했던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스쳤다.

내장사 연못과 까치봉의 험난한 오르막길


전북 정읍시 내장산 정혜루 앞 연못

내장사에 들어서 정혜루 앞 연못을 둘러보았다. 탐방객들이 저마다의 염원을 담아 연못 속 거북 등이나 바위 위로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기원을 담아 복을 비는 인간의 소박한 마음들이 모여 있는 풍경이었다.

천왕문을 지나 제2봉인 까치봉(717m)을 향해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숲길에 들어서자 가슴이 열리고 머리가 맑아지며 기분이 상승기류를 탔다. 오르는 도중 발견한 빨간 단풍잎. 사람들은 그 화려함에 감탄사를 연신 터뜨리지만, 나뭇잎에게는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피어나 마지막 제 할 일을 다 하고 떨어져 나가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까치봉으로 향하는 코스는 무척 가파르고 험했다. 날을 세운 돌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와 있어 발을 잘못 디디면 크게 다칠 위험이 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물은 바짝 말라 있었고, 등산객들의 발걸음에 풀썩이는 흙먼지가 날려 마른 입술을 축이며 겨우 오아시스 같은 정상에 다다랐다. 힘들고 지쳐 그만 내려가고 싶다가도 정상이 주는 시원함과 개운함 때문에 다시 산을 찾게 된다.

다만 까치봉 정상 길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음식을 펼쳐놓은 무리가 오가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큰 소리로 수다를 떨며 통행을 방해하는 몰염치한 모습은 일종의 군중심리에서 비롯된 듯했다. 여럿이 모이면 자신의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여겨 대범해지는 경향이 있다. 씁쓸한 기분에 물 한 모금만 마시고 곧바로 신선봉으로 발길을 옮겼다.

신선봉 풍경과 문필대, 그리고 내려오는 길


전북 정읍시 내장산 최고봉 신선봉

계단 틈새에 다소곳이 피어난 작고 앙증맞은 하얀 들꽃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내장산의 최고봉인 제1봉 신선봉(763m) 역시 산악회 회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즐기는데, 즉석에서 오징어회 무침까지 만들어 먹는 모습에 산의 맑은 공기 대신 음식 냄새가 섞여 들었다.

남편은 남들이 한참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느긋하게 정상 인증사진을 남겼다.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전북 정읍시 내장산 문필대


하산길에 글씨를 잘 쓰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승려가 문필가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문필대'를 지났다. 가파른 내리막을 쿵쿵 내려오다 보니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근육이 뭉치기 시작했다. 무릎 위 통증을 느끼면서도 남편은 편안한 케이블카 대신 걸어서 하산하길 고집했다. 천천히 쉬어가며 걸어 내려가는 편이 산을 온전히 느끼기에 더 좋아서였다.

오후 1시 40분쯤 전망대를 거쳐 내려오는 길에는 늦은 산행을 시작하는 이들과 하산하는 인파가 얽혀 산길이 북적였다. 그 많은 사람들을 품어주느라 산은 몸살을 앓을 법도 한데, 불평 한 마디 없이 맑은 공기와 쉼터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었다. 조건 없이 품어주고 내어주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산을 그리워하고 다시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서랍 속 고이 간직했던 추억을 꺼내어본다. 가물고 팍팍했던 산길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눈 말들과 내장산이 내어준 넉넉한 품은 여전히 가슴속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