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2026

[합천 황매산] 황매산 등산코스 추천 | 덕만주차장·철쭉군락지·억새밭·황매삼봉·추성부 산행기


황매산 등산코스와 핵심 정보요약


구분주요 내용
위치경남 합천군 가회면·대병면 & 산청군 차황면 경계 (높이 1,108m)
산행 코스덕만주차장 ➔ 닭벼슬바위 ➔ 철쭉군락지 & 억새밭 ➔ 데크계단 ➔ 황매산 정상(1,108m) ➔ 황매삼봉(암릉 구간) ➔ 오토캠핑장 방향 ➔ 은행나무 주차장 ➔ 도로 따라 덕만주차장 (원점회귀)
소요 시간 약 5~6시간 소요 / 정상 부근 및 황매삼봉 암릉 구간은 밧줄을 타는 수직 암벽이 있어 주의 필요, 그 외 능선 및 하산길은 무난
볼거리산청 길목의 원앙송 및 선도대, 닭벼슬바위 기암괴석, 수만 평의 철쭉군락지 및 은빛 억새 물결, 황매삼봉 스릴 암릉, 합천호 조망
산행 팁하산 시 은행나무 주차장에서 덕만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구간 중 도로(차도)로 들어서면 차량 매연을 마실 수 있으므로 이정표를 잘 확인하여 산길 샛길로 진입하는 것을 추천

느닷없는 출발과 예식치 못한 배터리 방전

일요일 아침, 딸아이의 도시락을 싸고 있는데 남편이 느닷없이 황매산에 가자고 제안했다. 이른 시각도 아닌 데다 합천까지는 족히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라 괜찮겠냐고 물으니 서두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단다. 부랴부랴 과일을 챙기고 따뜻한 물과 커피를 담아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김밥집에 들러 김밥까지 사서 배낭에 챙겼으니 이제 황매산을 향해 내달리기만 하면 될 터였다.

하지만 뜻밖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 시동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덜덜거리던 엔진 소리는 이내 피지직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었다. 가뜩이나 출발이 늦어졌는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지 아득해졌다. 긴급 출동을 요청하고 10여 분을 기다려 수명이 다한 배터리를 새것으로 통째로 교체하고 나니 시계는 이미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소 늦은 시각이었지만 아쉬운 대로 황매산으로 차를 몰았다.

88고속도로의 여유와 산청 길목에서 만난 역사

26년 동안 꿋꿋하게 2차선을 고집해 온 88고속도로를 이용했다. 제한속도 시속 80km로 결코 고속으로 달릴 수 없는 이 도로는 구불구불 휘어지는 곡선 구간 덕분에 마치 일반 국도를 달리는 듯한 정겨운 풍경을 선사했다. 갈 때마다 공사 중이라 언제 4차선으로 확장될지 기약이 없어 보였지만 누가 더 느긋하게 달릴 수 있는지 시험에 들게 하는 듯한 길을 따라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비로소 가슴이 뚫리듯 시원해졌다.

산청 나들목을 빠져나오자 길가에 일렬종대로 늘어선 하얀 구절초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환영 인사를 건넸다. 지리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을 따라 황매산으로 접어들자 산간 지역답게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병풍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산 아래 거친 땅을 일군 아담한 다랑이논마다 황금빛 벼가 층층이 실하게 여물어 찰랑이고 있었다.

 


황매산으로 가는 길에 물산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뿌리가 다른 두 소나무가 한 몸을 이뤄 200여 년을 살아온 '원앙송'을 만났다. 사랑하는 이들이 이 나무에 소원을 빌면 부부의 연이 맺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원앙송 바로 옆에는 풍속을 어지럽히는 자를 교정하던 '선도대(善導臺)'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향약의 4대 덕목을 지키기 위해 형벌을 정하고 죄를 범한 자를 멍석말이하거나 죄를 고해 참회하게 했던 역사적 장소였다.

가을 향기 가득한 닭벼슬바위와 철쭉·억새 군락지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을 길을 지나 덕만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은 주차장을 출발해 닭벼슬바위를 지나 철쭉군락지, 정상, 황매삼봉, 중봉, 장군봉을 거쳐 다시 덕만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잡았다.

경남 합천과 산청의 경계에 위치한 황매산(1,108m)은 합천호의 푸른 물에 비친 산자락이 매화 꽃잎을 닮아 '매화꽃 속에 홀로 떠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태백산맥의 마지막 준봉이자 고려 시대 무학대사가 수도한 장소로 황(黃)은 부를, 매(梅)는 귀를 의미하여 풍요를 상징한다.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예부터 많은 이들이 찾던 명산이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옷에 붙는 도깨비바늘이 지천으로 퍼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릴 적 옷에 붙은 가시를 떼어내던 추억이 떠올랐으나 매끄러운 등산복에는 도깨비바늘이 붙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닭벼슬바위와 오토캠핑장 갈림길에서 작은 징검다리를 건너 닭벼슬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 위에는 바싹 마른 나뭇잎이 수북이 쌓여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낙엽 소리를 들으며 오르다 보니 뾰족한 가시를 내민 밤송이들이 허연 배를 드러낸 채 알밤을 품고 길 위에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발바닥에 전달되는 밤송이의 까칠한 느낌이 정겨웠다. 노란 솔잎이 두툼하게 쌓인 길과 도토리 알맹이들이 부딪히는 오솔길을 차례로 걸었다. 산속의 초목들이 한 해의 삶을 마감하며 스러져가는 가을의 한복판이었다.

닭벼슬바위에 올라서서 사과 한 조각을 베어 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봉우리마다 기암괴석이 만물상처럼 솟아있고, 산비탈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들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어 올라선 넓은 벌판에는 수만 평에 달하는 철쭉과 억새 군락지가 펼쳐졌다. 햇살에 반사된 철쭉 이파리는 빛을 발했고, 은빛 억새는 바람에 넘실거리며 장관을 연출했다.

정상에서의 바람과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

철쭉길과 억새밭을 지나 500여 개의 데크계단과 돌계단을 가쁘게 올라서자 마침내 사방이 탁 트인 산마루에 도달했다. 거세게 파고드는 가을바람을 두 팔 벌려 안으니 뼛속까지 시원함이 밀려왔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200m쯤 더 걸어가 황매산 정상에 섰다. 울뚝불뚝 서 있는 바위들을 네발로 기어올라 정상석을 어루만졌다.



정상 옆 봉우리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아스라이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겹겹이 이어진 산능선들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때 산을 울리는 소리에 남편이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라며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를 검색해 보라고 했다. 김밥을 입에 물고 스마트폰으로 찾아 읽어내려간 추성부는 다음과 같았다.


구양자가 밤에 책을 읽다가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섬뜩 놀라 귀 기울여 들으며 말하기를
"참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빗소리 같다가 소슬한 바람소리 같다가 문득 기운차게 뛰어올라 물결 부딪히는 소리 같으니
마치 파도가 밤에 놀라 비바람이 갑자기 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물건에 부딪힘에 쨍그렁 쨍그렁하여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것 같고,
적진으로 나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물고 질주하듯 호령 소리 없이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내가 동자에게 말하기를
"이게 무슨 소리냐, 너 좀 나가 보아라." 하니,
동자가 이뢰기를
"달과 별이 맑게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으며 사방에 인적이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아, 슬프도다! 이것이 바로 가을의 소리(秋聲)로구나!"

구양수가 바람 소리를 통해 가을의 쓸쓸함과 세월의 조락을 노래했듯 황매산 산마루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속에서 찬바람과 함께 저물어가는 가을과 인생의 깊이를 여과 없이 체감할 수 있었다.

황매삼봉의 스릴 넘치는 암릉과 아쉬운 하산길

오후 3시가 넘어 하산을 시작했다. 삼봉으로 넘어가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거칠었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를 밧줄 하나에 의지해 올라야 할 정도로 암벽 등반에 가까운 스릴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황매삼봉을 오르내리는 동안 짜릿하고 알싸한 산행의 묘미를 만끽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구불구불 물길이 휘돌아가는 합천호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산에 해가 기우뚱해지며 산 그림자가 길어지자 당초 예정했던 코스 대신 오토캠핑장 방향으로 코스를 변경했다. 은행나무 주차장까지 이어진 완만한 숲길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은행나무 주차장에서 이정표를 잘못 보는 바람에 산길이 아닌 아스팔트 차도로 접어들고 말았다. 덕만주차장까지 2.8km를 걸어 내려가는 동안 오가는 차량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맑은 공기를 마시러 온 산에서 하산길에 차량 매연을 실컷 마시게 된 셈이었다. 산 아래 다 내려와서야 겨우 샛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가을의 끝자락에 찾은 황매산. 하산길에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산이 베풀어준 풍성한 절경과 넉넉한 품에 비하면 작은 해프닝일 뿐이었다. 산은 언제나 내일을 살아갈 힘을 실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오늘도 그 웅장한 산자락을 마음껏 누비며 가슴 깊이 호흡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추억 속의 서랍을 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