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비 소식이 있다는 소식에 여차하면 이번 주 등산도 어렵겠다 싶어, 화요일로 계획했던 산행을 월요일로 앞당겼다. 일주일에 두 번은 산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남편이 치과 치료를 받느라 지난주에는 한 번밖에 가지 못했던 터라 마음이 급했다.
날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만 하는 남편은 사실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매일 정해놓고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정말 못마땅해했다. 특히 운동처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억지로 해서도 안 되고, 마지못해 해서도 안 되며 '좋아서 즐기면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게 남편의 지론이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딱 맞는 운동이 바로 일주일에 두 번씩 빡세게 즐기는 산행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산으로 향했다.
수년 전 가을 끝자락, 가을의 꼬리를 거두며 겨울을 준비하던 무등산 산행 기록을 이제야 정리해 본다.
1. 무등산 개요 및 산행 정보 요약
| 구분 | 주요 내용 |
| 산명/위치 | 무등산 (광주광역시 동구·북구, 전라남도 화순군·담양군 일대 / 높이 1,187m) |
| 산행 코스 | 원효사/산장 ➔ 토끼등 ➔ 중머리재 ➔ 장불재 ➔ 중봉 ➔ 동화사 터 ➔ 덕산너덜 ➔ 늦재 ➔ 하산 |
| 주요 특징 | 회갈색으로 물든 억새와 능선:잎 떨구고 앙상해진 중봉의 겨울맞이 풍경 동화사 터: 잎이 떨어진 후 비로소 드러나는 옛 수도 도량의 층층이 너른 터 덕산너덜: 도도하게 흐르는 거대한 돌강과 푸릇푸릇한 산죽 군락 길 |
| 산행 난이도 | 중 (경사가 완만해 여유로운 산책형 등산이 가능하나, 덕산너덜 내리막 돌계단/낙엽 미끄러움 주의) |
2. 다시 찾은 무등산, 한결 여유로워진 발걸음
이번에도 무등산에 올랐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토끼등을 지나 중머리재, 장불재로 올라가는 코스이다.
"마치 뒷산 오르는 것 같아. 뭔 일인지 모르겠네. 산책하듯 올랐어!"
산에 오르며 갑자기 힘이 들어간 어깨가 우쭐거리고, 건방진 마음이 하늘을 찌른다. 그동안 계속 이어온 산행 덕분에 다리 근육이 댕돌같이 단단해진 것일까? 다리의 팍팍함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올라왔다. 슬렁슬렁 걸으면서 숨을 조절한 것도 한몫 제대로 한 것 같다.
이제는 제법 할랑할랑 여유를 부리면서 긴 시간의 산행도 무리 없이 소화해 내고 있다. 자연에 감사하고, 끄떡없이 잘 버텨주는 서로의 몸에 감사할 따름이다.
3. 회갈색으로 물든 중봉과 동화사 터의 속살
내려올 때는 중봉, 동화사 터, 덕산너덜을 지나 늦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중봉에서 바라본 서석대와 산자락은 마치 잿개비를 뿌려놓은 듯 회갈색으로 탈색되어 있었다. 불과 일주일 만인데, 나무들은 이파리를 모두 떨구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쓸쓸하게 남겨두었다. 괜스레 마음조차 회갈색으로 물드는 듯했다.
동화사 터에 이르러 이파리가 모두 떨어진 가지 사이로 산의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팔랑팔랑대던 이파리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맨몸을 드러내니, 그제서야 층층이 너른 터가 눈에 들어왔다.
"제법 큰 절이었을 듯한데, 그 높고 험한 곳까지 누가 다녔을까?"
"일반 불자는 아니고 스님들의 수도 도량이었을 거야."
우리는 동화사에 대해 내키는 대로 이야기를 나누며, 정갈하게 잘 다듬어진 돌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4. 산죽 길과 덕산너덜을 지나며
덕산너덜로 가는 길은 강파른 내리막길이다. 돌계단마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낙엽을 밟으며, 행여 미끄러질까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한눈팔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낭패를 보기 때문에 눈에도 절로 힘이 들어갔다.
산자락에는 푸릇푸릇한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번식력이 강해 다른 식물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는 산죽이 산마다 세를 불리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런 산죽이 길가까지 가지를 내밀어 마치 "손을 잡고 가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민 손을 잡으니 사르락사르락 바람이 훑고 가는 소리가 정겹다.
드디어 도착한 덕산너덜.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돌강을 한 발 한 발 건널 때마다 가슴이 들먹거렸다.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된 듯, 너덜겅 속으로 자꾸만 파고드는 기분이 들었다.
5. 가을의 꼬리를 거두며, 겨울을 맞이할 준비
너덜겅을 빠져나오니 또다시 산죽 밭이 펼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산죽을 사르락사르락 쓰다듬으며 늦재로 내려왔다.
포장된 큰길에도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이파리를 모두 떨군 나무들은 저마다 앙상하게 남은 가지로 겨울맞이 채비를 서두르는 모양이다. 이제 가을은 질질 끌던 꼬랑지마저 소리 없이 거두어들일 것이고, 날은 싸늘하게 식어 움츠러들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어느 결에 겨울 문턱에 서서 서성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