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2026

[홍도 여행] 📋 [1편] 지독한 뱃멀미 끝에 마주한 붉은 보석, 홍도와 흑산도 1박 2일


새벽녘 푸른빛 도는 어스름을 헤치고 남편과 나는 목포로 향했다.

무료로 운영되는 제주 여객선 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목포연안여객선 터미널로 가서 7시 50분 발 홍도 승선권을 매표했다. 3월 말부터는 평일이라도 당일 매표가 쉽지 않다는데, 3월 초라선지 여행객은 그리 많지 않아 대합실은 한산했다.

주차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며 남편이 서두르는 통에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는데, 주차장은 되레 헐렁하여 30여 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흑산도ㆍ홍도를 드디어 가는구나."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대합실을 서성이는데, 우리를 싣고 갈 동양고속페리호가 부두에 닻을 내리고 있다. 마음은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 출렁거렸다.

망망대해 위로 펼쳐진 파도의 춤

우리를 태운 배가 서서히 움직였다. 배는 잔잔한 바다 위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렸다. 크고 작은 섬들이 따라오는데 살아 움직이는 그림 같다.

배는 비금도와 도초도를 다리로 이어 하나가 된 두 섬의 선착장 '비금도초'에서 잠시 멈췄다가 흑산도를 향해 떠났다.

바다를 점점이 수놓았던 섬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 많던 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도 땅도 그저 물로 가득 찼다. 망망대해 푸른 물결 위에 우리를 태운 배 한 척만이 당그랗게 물길을 달리고 있었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밀려오는 너울성 파도가 마치 고래가 춤을 추는 듯 아름다웠다. 넘실넘실 출렁이는 물결 따라 넓고 넓은 바다가 요동을 치니 몸도 덩달아 리듬을 탔다. 파도는 높이 솟아오르기 내기라도 했는지 2m는 족히 넘는 파도를 몰고 와 배를 들어 올린다.

앞발을 치켜들고 위로 솟았다가 쿵 하고 내려앉으니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흐흐흐"

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뒷자리에 앉은 승객의 목소리에 흥이 실렸다.

 "그렇지, 이 정도는 되어야지."

'당연한 말씀.' 나도 그리 생각했다. 만면에 웃음을 물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물었다. 

"그렇게 좋아?" 

"응."

그랬는데, 재미도 즐거움도 딱 그때까지였다.


성난 맹수 같았던 바다, 그리고 뱃멀미

몰려오는 큰 너울 따라 놀이기구 타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끼며 비금도초를 지나 30여 분 달렸지 싶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몸을 곧추세우고 심호흡을 크게 했지만 이마에는 이미 진땀이 흥건하게 배어있었다.

파도는 이제 심술딱지가 덕적덕적 붙은 것 같았고 성난 맹수가 되어 달려드는 듯했다. 그 파도의 엄습을 이겨내려 애쓰는 내 몸이 고부라진 파김치가 되면서부터는 일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너무나 멀쩡한 남편은 내 손을 주물러주고 등을 두드려주며 안쓰러워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 이는 내가 견뎌내야 하는 내 몫이었던 것을.

배배 꼬이고 메슥거림은 도를 넘어서고 있었으나 바다는 갈수록 더 큰 파도를 몰고 와 더욱 야멸차게 뱃전에 패대기쳤다. 빈속에 멀미약도 먹고 위약까지 신경 써서 챙겨 먹었는데, 멀미가 시작되자 시퍼런 물빛이 흙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흑산도에 가까워지자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배가 멈추고 반도 훌쩍 넘은 사람들이 내리는 사이 요동치던 내 속도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잠깐의 지체는 더 큰 시련을 주기 위한 잠깐의 평온에 불과하였던가. 홍도까지 가는 30여 분 동안 오장육부가 서로 엉켜 쌈박질이라도 하는지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결국 화장실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배를 집어삼킬 듯한 파도가 덤벼들어 배가 좌우로 기울며 바닷속에 곤두박질칠 것 같은 그 긴박한 순간에도 몇몇 사람들은 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었고 심지어는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가까스로 맨 뒷자리까지 갔는데 한 젊은 처자가 눈을 꼭 감은 채 일그러진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보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것도 잠시, 그저 예사로운 일이라는 듯 배는 거드럭거리며 시소게임에 열중했다.

끝내 나는 창자까지 딸려 나오는 듯한 통증과 함께 쓴 물을 모두 쏟아내고도 두 번의 속 뒤집힘을 겪고 나서야 배는 평정을 되찾았고, 홍도는 눈앞에 있었다.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은 그 먼 길을 혈혈단신으로 떠나야 했던 유배 길을, 
쉬어갈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돛단배에 몸을 싣고 고작 노 하나에 의지하여
저렇듯 거칠고 미친 듯 날뛰는 물길을 어찌 건넜을꼬."


전남 신안군 홍도 - 홍도연안여객선터미널

마침내 다다른 붉은 섬, 홍도 유람선 

마침내 가고 싶었던 홍도에 도착했다. 부두에서 홍도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렇게도 울렁거렸던 속이 진정되는 듯했다. 홍도를 보려면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봐야 한다기에 유람선 뜨는 시간표를 알아보러 홍도연안여객선 터미널로 들어갔다. 유람선은 하루에 두 번 운행하는데 12시 30분이 마지막 배란다.

또다시 두 시간가량 배를 타야 한다고 생각하니 멀쩡하던 입안에 쓴 물이 고였다. 한데 이틀 후에는 풍랑이 심해져 배가 뜨지 않을 수도 있단다. 1박 2일 여정이라 힘들어도 유람선과 등산을 하루에 해치워야 다음날 흑산도를 둘러보고 섬에서 나갈 수 있을 터. 두 시간여 기다리는 동안 속을 잘 달래 보자는 남편의 말에 유람선 승선권 두 장을 예매하고 숙소로 갔다.

뜨끈뜨끈한 매운탕 국물로 속풀이를 하고 나니 몸조차 풀어지는지 한소끔 단잠을 잤다. 잘 먹고 잘 잔 모양이다. 유람선을 타러 가는데 생기가 돈다. 좀 전의 뱃멀미 따위는 그새 까먹은 게다.

우리는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는 유람선을 타고 갑판에 섰다. 바람이 온몸을 사납게 휘감는다. 바람결이 매서우니 배 안으로 들어가라는 모양인데 추호도 갑판에서 떠날 생각은 없었다. 모자의 끈을 바짝 조여 머리를 감싸고 옷도 꽁꽁 여미고 싸매어 그 바람을 통째로 안았다.

                                      전남 신안군 홍도

눈을 두는 곳마다 자연이 빚어낸 섬세하고도 기기묘묘한 자태를 어찌 창 너머로만 볼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 역시나 추위에 아랑곳없이 뱃전에 나와 저마다 탄성을 쏟아냈다.

곱아서 펴지지 않는 손을 호호 불어 가면서도, 얼굴을 어지럽히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면서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자연을, 사람을 카메라에 담느라 내내 분주했다.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홍도는 가지각색의 신비스러운 바위들이 모여 섬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작품으로 완성시킨 듯했다.

유람선은 30여 분 동안 홍도 앞바다에서 출렁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승선한 사람들에게는 막 잡은 생선을 안주로 술 한잔 마시는 여유와 낭만이 주어졌고, 현지인에게는 노동의 대가가 주어진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 홍도(紅島) 이름의 유래
태양이 질 무렵 섬 전체가 붉게 물들어 홍도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암과 규암으로 이루어진 섬 자체가 홍갈색을 띠어 붉은 섬이 되었다고도 한다.
면적 6.47㎢의 섬 전체는 1965년 천연기념물, 2009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고치산 깃대봉 등산과 노을

고치산 깃대봉으로 가는 길은 좁고 가팔랐다. 경사가 심한 길을 사이에 두고 집과 숙소와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섬이 곧 산이어서였을 게다. 높이가 365m인 고치산 산행은 흑산초등학교 홍도 분교에서 시작한다.


전남 신안군 홍도 - 고치산 깃대봉

목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빨갛게 꽃을 피운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모여서 알은체를 한다.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소사나무도 고개를 빼물고 눈맞추잔다.

아름드리나무가 발길을 붙잡아 가던 걸음 멈추고 기둥에 잠시 기대어 섰다. 부서지는 햇살에 나뭇잎이 반짝이고 산새가 재자거린다. 바람이 스쳐간다. 나무들이 술렁이자 숲속에는 은은한 가락이 울려 퍼졌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올 때까지 힘껏 들이켰다. 산의 내음이 모두 내 안으로 들어왔다. 산을 마시고 또 마셨다. 그랬더니 산이 통째 내 안으로 들어왔다.

깃대봉에 올랐다. 그곳에는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르디푸른 바다와 몽돌 해변을 감치고 드는 파도, 오랜 세월 동안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깎아지른 웅장한 절벽이 있었다. 그것은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시근벌떡거렸던 하루가 저물어갔다. 죽은 듯 널브러져 배에 실려올 때는 홍도 여행이 이미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멀쩡하게 유람선을 타고 홍도의 겉모습을 보았으며, 깃대봉에 오르면서 오랜 지기를 만난 듯 산을 만났고, 산꼭대기에 올라 홍도의 속살을 보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음이 아니던가.


전남 신안군 홍도 - 깃대봉에서 본 노을

이제 30여 분만 기다리면 해넘이가 시작될 텐데 수평선 위로 구름층이 두텁다. 온전히 떨어지는 해를 보기는 어렵겠으나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남편은 그때까지 기다려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겠단다. 바람은 차고 이가 마주칠 정도로 오들오들 떨렸다.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리 추위를 견디며 자리를 지켜야 하나 하면서도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 광경이 해돋이이고 해넘이이기 때문일 게다.

정갈한 회 정식과 따뜻한 온돌방

산에서 내려오자 시장기와 피로감이 덩어리져 밀려왔다. 밥이고 뭐고 그저 눕고 싶었지만 그건 뱃속에 대한 예의가 아닐 터이기에 노근노근한 다리를 끌고 밥집으로 들어갔다.

회 정식을 시켰는데 곁가지 음식은 없고 예닐곱 가지 반찬에 회 한 접시가 나왔다. 가짓수는 적어도 음식이 정갈하고 맛깔스러워 아주 흡족하다는 남편은 소주 한 병을 곁들여 더더욱 흡족한 저녁식사를 했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쩔쩔 끓는 온돌방에서 넋 없이 잤다.


[흑산도 여행]📋[2편] 검푸른 바다 위 비밀 정원, 흑산도 버스 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