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제법 알싸하다. 시월도 하루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조석으로 찬 기운이 돌며 기온차가 상당히 벌어진 탓이다. 도시의 소음이 채 깨어나지도 않은 시간, 가을의 끝자락에 남아 있는 단풍을 보기 위해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을 안고 집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836.5m)다. 지난봄 비봉에 오른 후 다섯 달 만에 다시 찾은 북한산 산행이다.
📌 북악산·북한산 백운대 원점회귀 산행 정보 요약
| 항목 | 상세 정보 |
| 산행 코스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 보리사 ➔ 대동사 ➔ 약수암 쉼터 ➔ 백운봉 암문 ➔ 백운대 정상 ➔ 용암문 ➔ 산영루 ➔ 중성문 ➔ 원점회귀 |
| 총 산행 거리 | 약 10.5 km |
| 소요 시간 | 약 5시간 30분 예상 (휴식 및 조망 시간 포함) |
| 교통/접근성 |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 ➔ 통일로 IC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주차장 |
| 주요 포인트 | 대서문, 개연폭포, 약수암 너덜겅, 백운봉 암문, 백운대 정상석, 인수봉/만경대 조망, 용암문, 산영루, 중성문 |
1. 들머리 접근 및 웅장한 바위산과의 첫만남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통일로 IC에서 빠져나와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량을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마친 뒤 본격적인 들머리로 향했다.
저 멀리 거대한 회색 암봉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빌딩 숲 바로 뒤에 이토록 웅장한 바위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늘 바라만 보던 주봉 백운대를 오늘 비로소 오르게 된다.
2. 단풍과 물소리가 어우러진 계곡길 산행
이번 산행은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를 기점으로 보리사와 대동사를 지나 백운대에 오른 뒤, 용암문·산영루·중성문을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대체로 옛 북한산성 성터가 있는 연봉들을 따라 환주하는 구조이며, 각 골짜기의 물은 한곳으로 모여 북한천을 이루고 서북쪽으로 흘러나간다.
탐방지원센터에서 큰길을 따라 오른편 북한산성 분소 쪽으로 약 50분가량 올라가면 북한산성의 14개 성문 중 하나인 대서문(大西門)이 나온다. 대서문은 북한산성의 서문이자 정문 역할을 한다.
이번 산행에서는 계곡의 단풍을 즐기기 위해 계곡 옆길을 선택했다.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겼는데하늘과 물은 푸르고, 산과 계곡은 가을의 절정을 맞아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있다.
돌길을 밟는 자박거림
바람에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
콸콸콸 쏟아지는 계곡물소리
오케스트라 연주 못지않게 울려 퍼지는 자연의 소리를 새록새록 새기며 걸어가니, 도심에서 찌들었던 머릿속이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개운함이 느껴진다.
3. 비탈길과 너덜겅 구간: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오르는 길
북한천 계곡길을 따라 40여 분 올라가면 북한동(北漢洞)이라는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이곳은 과거 민초들이 300년 이상 터전을 이루며 살았던 역사적인 장소다. 현재는 북한동역사관이 들어서 있으며, 환경보호 활동과 등산객 편의를 위한 북한산국립공원 자원활동가 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북한동을 지나 보리사 삼거리에 다다른다.
오른편 길: 중성문과 산영루로 이어지는 완만한 하산/회귀 코스
왼편 길: 대동사를 거쳐 백운대로 직행하는 가파른 오르막 코스
우리는 백운대로 직행하기 위해 왼쪽 길로 들어섰다. 길은 초입부터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조금 오르면 개연폭포가 나오지만, 가뭄 탓인지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비탈이 심한 길을 계속 올라 대동사를 지나 약수암 쉼터에 도착했다. 출발지에서 이곳까지 약 2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진짜 난관은 약수암 쉼터부터 시작된다.
눈앞에 펼쳐진 길은 경사가 더욱 강파르고, 바위가 부서져 흘러내린 너덜겅 지대가 시작된다. 돌계단과 데크 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오르다 서기를 반복하며니 땀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오를수록 가쁜 숨을 내쉬느라 목이 타들어 간다.
그늘을 찾아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계곡마다 가을빛으로 흠뻑 젖어 있다. 다리는 무겁지만 눈앞에 펼쳐진 경관 덕분에 다시 힘이 솟아났다.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볼 북한산의 가을 풍경에 대한 기대감이 두 다리에 다시 동력을 불어넣었다.
4. 험난한 암벽과 백운봉 암문
숨을 몰아쉬며 가다 서기를 반복해 30여 분을 더 오르면 북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백운봉 암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돌계단을 올라서 문으로 들어섰다.
💡 백운봉 암문의 특징과 역사
위치: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의 고개에 위치한 북한산성 14개 성문 중 최고지대 암문(暗門)
역할: 비상시 물자 수송 및 군사 이동로로 활용
형태: 일반 성문과 달리 상부에 문루를 얹지 않고, 홍예(무지개 모양,아치) 대신 네모난 긴 돌을 얹어 문을 만들었으며 현판이나 특별한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암문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나가 위를 쳐다보니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 암문에서 백운대 바위 절벽을 타고 300m를 더 올라가야 비로소 정상에 닿는다.
아득한 경사에 잠시 다리의 힘이 풀리는 듯하지만, 다행히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철제 와이어 난간이 잘 설치되어 있다. 경사가 몹시 가팔라 손에 땀이 나고 다리가 떨리지만, 잡고 오를 시설이 없던 비봉과 달리 난간이 있어 한결 안심이 되었다. 다른 산객들과 줄을 지어 한 발씩 떼어 놓으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5. 백운대 정상(836.5m) 조망 및 북한산의 역사
마침내 백운대 정상석이 있는 큼직한 너럭바위에 올랐다. 천지사방을 둘러보고 내려다보는 상쾌함은 왜 사람들이 백운대를 찾는지 실감하게 만든다. 백운대는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봉으로, 하얀 구름이 봉우리 주변에 머물다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석 앞에는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산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뒷사람이 앞사람의 사진을 찍어주는 성숙한 질서 속에서 순서를 기다려 정상석과 태극기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겼다.
좁은 정상석 둘레를 돌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깨를 겯고 있는 북한산 연봉들의 자태가 장대하게 펼쳐진다.
인수봉(810.5m): 백운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암봉
만경봉(800.6m): 백운대 뒤편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봉우리
도봉산: 인수봉 너머로 시원하게 조망되는 산세
📜 북한산(삼각산)의 역사적 배경
명칭의 유래: 조선시대에 한성의 북쪽 산이라는 뜻에서 북한산(北漢山)이라 불렸다.
삼국시대: 백제 시대에는 한산(漢山)이라 불렸으며, 인수봉은 부아악(負兒嶽)이라 불렸다. 백제 시조 비류와 온조 형제가 올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 진흥왕은 557년 이곳을 차지한 뒤 비봉에 순수비를 세웠다.
고려시대: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봉(800.6m) 세 봉우리가 마치 세 개의 뿔처럼 솟아 있다 하여 삼각산(三角山)이라 불렸다.
역사의 숨결을 느낀 후 너럭바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과 빵으로 요기를 하며 땀을 식혔다.
6.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하산길 (용암문 ~ 산영루 ~ 중성문)
백운봉 암문으로 다시 내려와 용암문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이 구간은 북한산성의 동쪽 성벽을 따라 걸어가는 능선 길이다.
주요 하산 포인트
만경봉(萬景峰): 조선 개국 당시 이성계가 올라 도성의 터를 둘러보았다는 봉우리로, '만 가지 뛰어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는 뜻에 걸맞은 풍경을 자랑한다.
용암문(龍岩門): 1711년(조선 숙종 때) 완성된 북한산성의 우람한 석축을 지나며 역사 속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숨결을 느껴본다.
북한산성(北漢山城): 백제 개로왕 시절 처음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성은 1711년 숙종 때 완공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유사시 왕실과 조정이 피난할 목적으로 축조되었으며, 둘레 약 11.6km, 성벽 내부 면적만 여의도의 2배가 넘는다. 성내에는 6개 대문, 8개 암문, 2개 수문이 있으며, 과거 120여 칸 규모의 행궁터(현재 복원/발굴 조사 중) 와 승병들이 머물던 승가사, 국녕사 등의 사찰이 있다.
용암문에서 왼편 기슭길로 내려가면 강북구 우이동 방향으로 연결되며, 능선길을 따라 곧장 가다 오른편 기슭으로 내려가면 산영루로 연결된다.
🏛️ 산영루(山映樓)와 중성문(中城門)
용암문에서 오른편 기슭으로 내려가 바위 위에 고운 단청을 하고 앉아 있는 팔작지붕 누각인 산영루를 만났다. '산의 그림자가 물에 영롱하게 비친다'는 뜻을 가진 산영루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가 찾아와 시를 남겼을 만큼 북한산 최고의 선경(仙景)으로 꼽히는 곳이다. 누각 앞으로는 여러 골짜기에서 모인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주변 기슭에는 늦가을 단풍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다.
산영루를 지나 완만해진 계곡길을 따라 내려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중성문(中城門)을 통과했다. 중성문에서 약 40여 분을 더 내려가 처음 갈라졌던 보리사 삼거리에 다다랐다.
보리사 삼거리부터 주차장까지는 올랐던 계곡길을 되짚어 내려가며 늦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 북한산 백운대 산행 마무리
두 번째 북한산 산행은 땀 흘린 만큼의 큰 기쁨과 함께 또 다른 갈증을 남겼다. 하산을 마치기도 전에 바위산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이끌려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매력적이다.
북한산은 봉우리와 능선마다 우리 역사와 조상들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장소다. 특히 늦가을 철에는 회색빛 화강암 암봉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우러져 최상의 경관을 선사한다.
억겁의 세월 동안 번뇌의 흙덩이들은 깎여 나가고 육중한 바윗덩이로 남은 산, 북한산. 계절이 지나면 나무들도 잎을 다 떨구고 단단한 줄기만 남길 것이다. 비우고 버리는 산의 지혜를 배우며 개운한 마음으로 산행을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