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 혼자 지내시는 친정엄마를 모시고 모처럼의 여름 휴가를 맞이했다. 평소 주위에 친구분들과 정겨운 이웃들이 계시지만, 늘 곁을 지켜드리지 못한다는 죄송함과 마음의 무게가 가슴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길지 않은 일정이지만 엄마와 오롯이 귀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젊은 날은 늘 고단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일찍 혼자되신 시어머니를 모시며 끼니마다 따스한 밥을 지어 올렸고, 수시로 찾아오는 친구분들의 식사 수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다.
고운 얼굴에 가녀린 몸을 가졌던 할머니는 여름이면 엄마가 풀을 빳빳하게 매겨 손질해 준 하얀 모시옷을 맵시 있게 입고 외출하곤 하셨다. 마치 백로가 사뿐사뿐 걸어가듯 발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환하게 빛나던 그 모습. 하지만 약주를 좋아하셨던 할머니는 돌아오시는 길에 술에 취해 정갈하던 모시옷을 후줄근하게 적신 채 비틀거리며 집으로 들어오시곤 했다.
단정하게 기름을 발라 한 올의 머리카락도 흐트러짐 없이 빗어 넘기시던 할머니가 술만 들어가면 매무새와 정신을 놓아버리셨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일찍 남편을 여의고 견디기 힘들었던 외로운 세월을 술로 달래셨던 것이리라. 술은 할머니의 남편이자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런 시어머니 수발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그래서 기억 속 젊은 날의 엄마는 항상 얼어붙어 있었고 그늘진 얼굴이었다. 아버지 가시기 전까지도 저녁밥 때가 되면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종종거리며 옮기시던 엄마. 유난히 당신 부재를 싫어하셨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 마음 졸이며 달려가던 그 세월이 지났다. 이제는 마음 편히 느긋한 일상을 누리셔도 될 텐데.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잠자리에 들기 전후로 매일 근력 운동을 거르지 않으시던 부지런한 엄마가, 요즈음은 한낮에도 자주 누우시고 한번 잠들면 시끄러운 소리에도 깨지 못하신다. 몸이 자꾸 가라앉는다는 말씀에 마음이 아린다. 무더위에 지치신 건지, 아니면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의 허탈함과 평생 꼭 쥐고 있던 긴장의 끈이 스르르 풀어져 버린 탓인지 모를 일이다. 이제는 그저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편안하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누리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결혼 후 엄마와 이렇게 오롯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두 아이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에서 보낸 두 달 이후 처음이다. 남편과 함께 엄마를 모시고 여수로 향했다.
📌 여수 여행 코스 & 핵심 정보 요약
| 구분 | 주요 내용 |
| 여행지 |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 해상국립공원, 해양수산과학관, 향일암) |
| 추천 코스 | 여수 해상 유람선 ➔ 해양수산과학관 (3D 영상실·수족관) ➔ 돌산 향일암 (대웅전·극락전·약수터) ➔ 돌산갓 구매 |
| 주요 포인트 | 여수 유람선: 해상국립공원의 섬과 바다 절경 감상 (멀리약 준비 추천) 향일암: 가파른 암벽 계단과 바위 틈 해탈문, 대웅전에서의 저녁 예불 종소리 특산물: 톡 쏘는 맛이 일품인 돌산갓 (직접 담그는 갓김치) |
| 여행 팁 | 한여름 휴가철 향일암 진입로는 주차난이 심하므로 길가 주차 공간을 빠르게 확보하거나 대중교통 이용 권장 |
타오르는 불볕더위 속 여수 해상 유람선과 해양수산과학관
더위가 절정에 달한 날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수리 위로 화롯불을 이고 있는 듯 후끈거렸고, 살갗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도저히 걸어서 이동할 엄두가 나지 않아 여수 해상국립공원을 둘러보는 유람선에 올랐다.
출항을 기다리는 동안 해변에 전시된 거북선을 관람하는데,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땀이 범벅되어 온몸이 흠뻑 젖었다. 휴가철이라 승객으로 가득 찬 유람선 내부에는 엔진 소리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란, 취객의 횡포까지 겹쳐 피로가 밀려왔다. 뱃멀미로 눈을 감고 계시던 엄마는 멀미약을 드시고 잠깐 잠을 청하신 뒤에야 한결 표정이 편안해지셨다.
배에서 내려 향일암으로 가는 길에 해양수산과학관에 들렀다. 알록달록한 희귀 물고기와 3D 영화를 관람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관람객의 눈요기를 위해 좁은 수조에 갇혀 지내는 거북이와 바다 생물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가슴에 남았다.
향일암의 가파른 계단과 울려 퍼지는 저녁 예불 종소리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 소리가 맑게 퍼져나갔다. 사방을 울리고 마음까지 감싸 안는 종소리에 모여든 사람들도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화재로 다시 지어진 대웅전 안팎과 극락전으로 향하는 바위 사이의 좁은 해탈문길은 몇 번을 와도 신비롭기만 했다. 화마를 막아준다는 상징으로 곳곳에 세워진 돌거북의 등 위에는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동전으로 쌓여 있었다.
하산길에는 돌산갓을 사 들고 왔다. 조미료 맛이 나는 시중 김치 대신, 손맛 좋은 엄마가 직접 갓김치를 담아주겠다고 하셨다. 엄마의 손맛에 길들여진 우리 식구들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맛이다. 익숙함에 안도하고, 엄마의 품에 길들여져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여수에서의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