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2026

[제주 여행] 📋 [2편] 둘째 날: 비바람을 뚫고, 아슬아슬했던 우도행

제주도 제주시 우도

1.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바람과 불안한 예감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제법 세게 불었다. 한라산은 셋째 날 오르기로 하고 우도에 먼저 들어가자고 이야기는 해두었는데, 배가 뜨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밀려왔다.

밤새 내린 비는 아침이 되자 더 세찬 바람을 동반하여 사선으로 창문을 두드렸다. 나무들도 덩달아 쇳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휘둘리는데, 오후부터 그친다던 비가 더 그악스럽게 퍼붓고 있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쨌든 여객선 터미널로 가서 배가 뜨지 않으면 박물관이라도 찾아 나서기로 했다.

2. 안개 속을 뚫고 다다른 성산 여객터미널

바람을 실은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안개까지 산 아래로 내려와 온 산을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한 치 앞이 안 보여 더듬거리면 얼른 안개를 거두었다가, 다시 뿌연 세상을 만들어놓고는 재미들렸는지 낄낄거리는 듯했다.

안개와 숨바꼭질하듯 산길을 달리다 평지로 내려오니, 순식간에 안개는 꼬리를 감추고 울창한 숲을 가른 사잇길이 나왔다. 하늘을 찌를 기세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진 길을 지나 마침내 성산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바람이 점점 잦아들더니 비도 얌전해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잗다랗게 내리는 가랑비를 손등으로 가리며,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선착장으로 뛰어갔다. 우도로 가는 사람들이다. 배가 뜨는 게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어느새 스르르 풀어지고 입가가 괜스레 실룩거렸다.

3. "신분증이 없다니!" 식은땀 흘렸던 우도행 승선표 매표

우도 가는 승선권을 끊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합실은 습한 기운이 꽉 차 끕끕했다. 접은 우산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노랑, 분홍 비옷이 펄럭거리며 물방울이 튀었지만, 배가 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들떠 있었다.

신상표를 작성하고 왕복 승선권을 끊으려는데 남편이 지갑과 신분증을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아침에 바지를 갈아입으며 미처 챙기지 못한 모양인데, 넋조차 두고 나온 사람 같았다.

신분증이 없으면 배를 탈 수 없는데 어떡하지? 숙소까지 왕복 두 시간이 걸리니 우도 가기는 틀렸나 싶어 맥없는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바로 그 순간, 선착장에 무인민원발급기가 떠올라 직원에게 문의하니 다행히 내 신분증으로 표 두 장을 끊을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속이 꽤나 탔던, 아슬아슬했던 우도행이었다.


제주도 제주시 우도

4. 부슬비 내리는 우도, 빗속을 거닐며 나눈 웃음

부슬부슬 빗방울 떨어지는 제주 바다를 여행객 가득 실은 배가 달렸다. 검푸른 바다에 하얀 포말을 그리며 달리는 배의 갑판으로 비가 들이쳤다. 선 채로 비를 맞으면서도 속은 어찌나 신바람이 나던지 들썩거리는 몸을 가라앉히느라 애를 먹었다.

우도 동천진동항에 내렸다. 우도를 둘러보는 수단으로는 전동차, 자전거, 전기 렌터카, 순환버스 등 다양했다. 삼륜 전동차를 타고 천천히 돌아보고 싶었지만, 성산으로 나가는 6시 마지막 배를 타야 했기에 순환버스 1일 자유이용권을 구입했다. 15분마다 다니는 버스를 타고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 구경한 뒤,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는 꼭 하우목동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처음으로 내린 곳은 우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우두봉'이었다. 소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우산이 거추장스러워 가게에서 비옷을 사 입었다. 우도가 우산에 가려 조금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어설픈 핑계도 한몫했다.

푸른 벌판에 망아지 한 마리가 의젓하게 폼을 잡고 서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서니 저도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어미 곁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우중이라 우산을 들고 우도를 찾았는데, 우산이 거추장스러워 우의를 사서 입었지.

       우두봉 가는 길에 망아지 한 마리 우두커니 서 있기에, 우아하게 사진 여러 장 찍고

       우연히 만난 망아지가 귀여워 자꾸 뒤돌아 보았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가, '우' 자가 들어가는 단어로 어쭙잖은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아이들처럼 키득거렸다.


제주도 제주시 검멀레해변

5. 소라 톳 짬뽕 한 그릇과 거짓말처럼 개인 하늘

우두봉 가는 길, 몽실몽실 피어났다 흩어지며 산허리를 감아드는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뽀얀 세상이 따로 있는 듯 경이로웠다. 이내 구름이 걷히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솔금솔금 내리는 가랑비가 풍치를 더해 주어, 비 오는 날의 우도행은 그 자체로 값진 선물이었다.

다음으로 검은 모래가 펼쳐진 검멀레 해변 끄트머리의 동안경굴을 보러 갔다. 거대한 고래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썰물 때만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동굴을 찾느라 눈이 분주한 사이, 빵 한 조각과 두유로 요기했던 뱃속에서 꼬르륵 신호를 보내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라며 우도의 별미라는 소라 톳 짬뽕을 먹으러 갔다. 듣던 대로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개운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다. 케케묵은 것들이 말끔히 씻겨 내려간 듯 비 온 뒤의 상쾌함이 물씬 묻어났다.

거추장스럽던 비옷을 벗어던지고 거무스름한 바위를 밟으며 파도 가까이로 갔다. 힘을 실어 밀려온 파도가 철썩이며 바위를 핥았다. 그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밤을 지새워도 좋을 만큼 파도 소리와 풍경은 근사한 짝꿍 같았다.


제주도 제주시 비양도


6. 섬 속의 섬, 비양도를 품으며 하루를 마치다

시간은 어느덧 마지막 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해 뜨는 광경이 수평선 속에서 해가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섬, '비양도'에 들렀다. 섬 속의 섬(제주 안의 우도, 우도 안의 비양도)인 그곳은 안 들렀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만큼 예쁜 섬이었다. 해신당을 보고 언덕의 봉수대에 올라 바닷가 등대까지 둘러보았다. 조금만 더 일찍 들어왔더라면 쫓기듯 나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껴서 조금씩만 쓰고 싶었던 시간이 벌써 이틀이나 지나버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함덕해수욕장의 황금빛 모래사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제주에서의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한라산 산행]📋[3편] 셋째 날: 드디어 한라산, 백록담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