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을 깨우며 출발한 성판악
드디어 한라산에 오르는 날이다. 주차장에 아침 일찍 도착하지 않으면 차 댈 곳이 없어 산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기에, 새벽 댓바람부터 소란을 떨며 가방을 챙겼다. 빠진 것이 없나 꼼꼼하게 살핀 후 숙소를 나왔다.
차는 성판악을 향해 달렸다. 비 온 뒤의 하늘은 막 세수를 마친 얼굴처럼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질 듯 깨끗했고, 초록이 짙은 나뭇잎들은 윤기를 한껏 뿜어냈다. 창문을 열고 팔을 뻗으니 산뜻한 바람이 팔을 타고 차 안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산행하는 날 날씨가 활짝 개어 청명하기까지 하니, 감사하게도 더없이 큰 복을 받은 듯했다.
성판악에 6시 30분쯤 도착했는데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7시에 가도 차 댈 곳이 없다더니 설마 했던 생각이 무색해졌다. '사람들 참 부지런하구나.' 그래도 다행히 주차장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2. 돌길과 조릿대 숲을 지나 속밭 대피소로
드디어 출발이다. 신발 끈을 단단히 고쳐 매고 간단하게 몸을 푼 뒤 산속으로 들어갔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다 같은 산일 진대 왜 그리 더 마음이 설레었는지, 아마도 바다 건너 제주의 산이라 그랬을 게다.
산길은 거무스름한 화산석이 제멋대로 깔려 있었다. 흙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돌길이라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심하게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나는 발끝에 닿는 돌의 느낌이 좋아 그다지 개의치 않고 걸었다.
정상까지는 길이 멀어 오래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을 뿐, 산길은 대체로 순탄했다. 4km 지점에 있는 속밭 대피소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갔다. 제주조릿대가 무성하게 자라난 일대를 '속밭'이라 부른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속밭 대피소까지 오르는 동안 조릿대만 질리도록 본 듯하다.
번식력이 왕성한 조릿대는 다른 나무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등산로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급속도로 번져 한라산의 골칫거리가 되었다더니, 이러다 온산을 뒤덮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수풀이 무성했다.
3. 고사목의 응원을 받으며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걷고 걷고 또 걸어서 사라 오름을 지나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새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물 몇 모금 마시기 위해 잠깐 주춤거린 것 말고는 쉼 없이 올랐는데, 그리 힘들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 명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허연 빛깔을 드러낸 채 서 있는 고사목이, 마치 '잘 왔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듯해 큰 힘이 되었나 보다. 백록담이 한 발 한 발 가까워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올랐던 모양이다.
4. 마지막 계단 천 개, 백록담을 향한 가쁜 숨
이제 가장 어려운 구간이 남았다. 앞으로 1시간 30분 동안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지금까지는 발걸음도 무겁지 않고 숨도 가쁘지 않아, 은근히 '나도 이제 산사람 다 되었다'며 혼자 목에 힘을 주고 으쓱해했는데, 과연 마저 잘 올라갈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되었다.
'별거 아니겠지. 그동안 연습 삼아 오른 산이 얼만데. 까짓것 백록담까지 한달음에 올라가, 온몸에 깁스한 것처럼 빳빳하게 서서 으스대야지.'
그랬는데 웬걸, 끝이 없을 것 같은 계단이 떡 버티고 서서 "그래, 어디 한달음에 올라가 보시지" 하고 조롱하는 듯했다. 내가 오판을 했던 모양이다. 수직으로 선 듯 가파른 계단에 기가 질려 얼른 목에 힘을 빼고 눈도 내리깔았다.
남편이 홀수를 셀 테니, 나보고는 짝수를 세면서 올라가자고 제안했다. 숫자를 세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에서 잠시 벗어날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수를 세어 백을 넘기고 삼십 정도 더 세었을까. 잘 들려지지 않는 팍팍한 다리를 겨우겨우 하나씩 올려놓고 있는데, 수를 세는 것—그것도 짝수만 세는 것은 도저히 가당치 않으니 제발 집어치우라고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하여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질질 끌며 늦장을 부리는데, 어느새 백록담이 코앞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산 아래가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그 어디선가 한 모라기의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5. 마침내 열린 백록담의 맨얼굴과 가슴 벅찬 감동
산길에 난데없이 줄을 길게 선 사람들이 보였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었다. 우리도 사진을 찍기 위해 줄 끝에 섰다. 어떻게 오른 한라산인데 사진 한 장쯤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끊임없이 올라올 테고 줄은 갈수록 길어질 테니, 사진 먼저 찍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바탕 소란을 떨며 가족사진을 찍는 무리가 있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두 자매네 식구들이 총출동한 것 같았다. 우리도 칠십이 되어서까지 아이들을 대동하고 산에 다니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보았다.
얼결에 뒤에 선 사람이 앞사람을 찍어주는 훈훈한 내력 덕분에, 남편과 함께 1,950m 한라산 정상석에 기대어 사진을 남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록담은 자욱한 구름에 가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며 준비해 온 식사를 했다. 따뜻한 커피 생각이 간절했으나 물로 입가심을 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기쁨과 흥분이 뒤섞인 소리로 백록담 주변이 들썩거렸다. 앉아있던 사람들이 엉거주춤 일어났고,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시선들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백록담이 드디어 가려진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구름이 말끔히 사라지자, 백록담의 맨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거대한 웅덩이에는 전날 내린 빗물이 조금 고여있었고, 그 둘레에는 연둣빛 풀밭이 부드럽게 펼쳐져 있었다.
난간에 기대어 넋이 빠진 듯 서있는데, 덩이진 구름이 다시 백록담으로 스르르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뿌옇게 덮어버렸다. 백록담은 다시 모습을 완벽하게 감추었다. 애간장을 태우듯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시 하얀 구름바다를 만들기를 서너 차례. 그 경이로운 광경을 눈에 담고서야 비로소 발길을 돌려 하산을 시작했다.
6. 하산길의 고단함과 가슴 가득 남은 기쁨
큰일을 해낸 듯 가슴이 벅찼고 내려오는 발걸음도 처음엔 가벼웠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힘을 가다듬고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쭈뼛쭈뼛 불거져 나온 돌들을 피해 넘어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내딛는 발걸음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올라갈 때는 성큼성큼 걷던 돌길이, 내려갈 때는 여차하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길이 되어있었다. 해찰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건만,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도무지 좁혀질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내리막길이 지루해지기 시작할 즈음, 언제나처럼 두통이 밀려오면서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두통이 시작되면 속도 덩달아 너울거리는 통에 고통은 항상 곱절이 된다. 발은 또 왜 그리 무거운지, 마치 쇠뭉치를 발목에 차고 걷듯 걸음걸음이 힘에 부쳤다.
가방을 뒤져 두통약 하나를 겨우 찾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큰 돌멩이 하나가 뇌 속에서 이리 쿵 저리 쿵 제 마음대로 굴러다니며 헤집어놓는 듯했다. "그러지 마라" 달래도 보고 사정도 해가며, 가다 쉬고 가다 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고단하긴 했으나 견딜 만한 힘듦이었고, 감사하게도 아무런 사고 없이 처음의 출발지점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한라산 정상을 밟고 내려왔는데 그쯤의 불편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일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루 온종일이 감동의 도가니였고, 그 기쁨을 송두리째 가슴에 품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라도 여행]📋 [4편] 넷째 날: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와 송악산의 밤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