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2026

[강원도 여행] 📋 [2편] 엄마와 함께 강원도 여행. 푸른 경포 바다와 노인 삼남매의 따스한 정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방에 한줄기 새벽빛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일직선을 그었다. 밤중인 줄 알았는데 날이 샌 모양이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여니 하얀 햇살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내가 깰까 봐 그냥 누워계셨던 엄마는 그제야 몸을 일으키시며 오랜만에 뒤척임 없이 푹 잤다고 하셨다. 전날의 피로가 단잠으로 이끌었지 싶다.

고소한 초당순두부 한 상으로 연 아침

햇빛이 사나워지기 전에 해변을 산책하자며 9시 조금 지나 경포대해수욕장으로 갔다. 헌데 뱃속에서 조금만이라도 괜찮으니 요기시켜 달라 성화를 부린다. 배에 걸신이라도 들어앉았는지 때도 모르고 자꾸만 시장기가 돌았다. 그동안 아침식사를 거르고 산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겐가.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순두부 마을로 갔다.

원조에, 몇백 년 된 전통에, 방송 출연 등 홍보용 간판이 걸려있는 식당에는 사람들이 곡선을 그리며 구불구불 길게도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이 있는 곳은 줄도 함께 있었다.

순두부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비교적 한산하다 싶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제법 빠른 3번 대기표를 받았다. 10여 분 기다려서 들어간 방은 상당히 넓었음에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에 사람들조차 금방 닿을 듯 앉아 있었다.

초당순두부 정식을 시켰다. 생선구이 세 종류에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보이는 반찬으로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음식들이 거푸거푸 입안으로 들어갔다. 괜히 대기표 받아 기다려서 먹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침이라 간단하게 요기만 하려 했던 것을 푸짐하고 배부르게 식사를 했다.

경포 해변의 솔바람과 활기찬 재회



다시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새 도로는 차들로 꽉 차 있었다. 주차장도 길가도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엄마와 내가 먼저 내리고 남편은 차 댈 곳을 찾아 떠났다.

모래밭과 도로 사이에 붉은 줄기 미끈하게 뻗어 올린 해송이 총총하게 늘어서서 큰 그늘을 드리웠다. 일찍 나온 사람들은 그늘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거나 누워있는데 그보다 더 편한 자세가 있을까 싶었다. 엄마와 나도 그늘진 곳을 찾아 앉았다. 물속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바닷가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하였다.

허리가 반쯤 구부러진 할머니가 밀차를 끌고 힘겹게 우리 곁으로 와서 차지고 구수한 강원도 옥수수를 맛보란다. 방금 쪄서 가지고 나왔다는 옥수수가 밀차에 한가득 담겨있어 언제 다 파나 괜한 걱정을 하며 개시를 했다.

강릉고속터미널로 가서 일정이 맞지 않아 이틀째부터 합류하기로 한 외삼촌과 이모를 만났다. 엄마의 얼굴빛과 목소리에 생기가 돈다. 언제 봐도 정답고 같이 있으면 사랑이 넘치는 남매들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하고 토닥이고 쓰다듬으며 옷매무새도 고쳐주는 손길은 따스하다.

"노인네들 정말 별나서 눈 뜨고 못 봐주겠다, 눈에서 금방 사랑표가 튀어나오겠다"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면 그도 좋으신지 다들 파안대소하며 유쾌해하신다. 살아온 과정이 남달라 더 애틋한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유별나게 사이좋은 남매들이다.

선교장의 고고함과 경포대 마루에 퍼진 추억

조선시대 상류층의 가옥을 대표하는 선교장으로 갔다. 고택은 많이 봐서 굳이 볼 것 없다 시는 외삼촌과 이모가 식사를 하시는 동안에 남편과 나는 뛰다시피 하면서 선교장을 둘러보고 나왔다. 아이들 어려서 다녀간 적이 있는데 기억에는 전혀 남아있지 않다. 경포 동해의 붉은 기상과 태백산맥 대관령의 푸른 기운이 모여 큰 터를 이룬 곳이 선교장이란다. 고택 뒤로 소나무 숲이 빙 둘러 있고 오래된 나무에 세월의 깊이가 녹아있었다.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된 고택이 고고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어 경포대로 갔다. 경포호를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누각에는 여행객들이 많았다. 마룻바닥에 질펀하게 앉아있는 사람, 팔을 베개 삼아 벌러덩 누워있는 사람, 새우처럼 등을 바짝 구부리고 잠들어 있는 사람 등 가지가지 모습이 그곳에서 연출되고 있었다. 대청마루처럼 고실고실하고 시원한 마룻바닥이 너나 할 것 없이 편했던 모양이다.


강원도 강릉시 경포대


우리도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쌩하니 내달려온 바람이 덥석 품에 안기어 더위에 축 처졌던 몸에 기운을 불어넣는다. 삼촌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너덧 살쯤인 것 같다 하셨다. 고집을 부리다 또망(도랑)에 세 번이나 빠질 뻔하셨다고.

한여름이었단다. 모처럼 친척 집에 가는 날, 외할머니는 모시로 곱게 지은 옷을 입혀 데리고 가려 했는데 외삼촌은 풀 먹인 모시옷에서 나는 워석거리는 소리도 싫고 가슬가슬한 촉감도 맘에 들지 않은 데다 움직임도 편치 않아 안 입겠다 버텼단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럼 또망에 빠뜨리겠다고 겁을 주었는데 그래도 막무가내였단다. 또망에서 물구나무서기를 두 번이나 겪으면서 세 번째는 정말 또망 속으로 빠질 것 같아 그제서야 백기를 드셨다나. 고집이 어지간하셨던 모양이다.

또 한 번은 할머니 따라 법당에 들어갔는데 멀거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얼른 절하지 않고 뭐 하나 하시기에, 어린 마음에 사람도 아닌 돌에 절은 왜 하나 싶어 그냥 서 있다가 나오셨단다. 휙휙 불어오는 바람의 시원함에 정신까지 맑아지는 것 같은 경포대에서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있었다. 한없이 늘어지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로 편안해서였을 게다.

오죽헌의 역사와 동양자수박물관, 그리고 그윽한 저녁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그대로 눌러앉을 듯하여 훌훌 털고 일어나 오죽헌으로 갔다. 괜히 나왔다 싶을 정도로 거리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몇 발자국 움직이는데 땀이 줄줄 흐르고 몸은 흐느적거려 뙤약볕 아래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음에도, 인품과 재능을 겸비한 부덕의 상징 신사임당과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를 만나러 유서 깊은 집 오죽헌으로 들어갔다.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

오죽헌은 뒤뜰에 줄기가 손가락만 하고 색이 검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이름 붙여졌단다. 율곡이 태어난 몽룡실과 율곡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 율곡의 저서 《격몽요결》과 유년기에 사용했던 벼루(용연)를 보관한 어제각, 사랑채 등을 둘러보고 나와 율곡기념관 앞 나무 그늘에 앉았다. 가만히 앉았으려니 바람이 솔솔 불어와 뜨겁게 덥혀진 몸을 식혀주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 빨리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저녁 먹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라 식당에 5시 예약을 해놓고 나가는 길에 동양자수박물관에 들렀다. 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자수가 전시되어 있었다. 엄마와 이모가 관심 있게 보셨다.

예약하고 간 식당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강원도 영동 청정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한우라 하여 은근히 기대하고 갔는데 헛짚은 건 아닌가 걱정되었다. 한우고기를 시켰다. 먼저 나온 곁들이 음식이 입맛을 돋우고 여러 종류의 고기도 육질이 연하여 입에서 살살 녹는 듯했다. 세 분 모두 생각보다 달게 잡수셔서 마음이 그지없이 흐뭇하였다.

밤 깊을수록 깊어지는 정

숙소로 들어온 여든넷 오빠는 요즘 들어 다리가 저리고 아파 힘들어하는 일흔아홉 동생이 안쓰러워 당신이 오랫동안 지압을 받으며 눈여겨두었던 기술로 누르고 두드리며 정성을 다했다. 실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커피와 주전부리할 것을 준비하여 남편과 나는 삼촌과 마주 앉았다. 할 일도 많고 들려줄 말도 많은 삼촌은 빠르게 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기회 있을 적마다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직까지는 몸도 생각도 건강하여 발로 확인하고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며 분주하게 생활하시지만, 쉬 지나가는 시간이 아쉬울 뿐이다.

둘째 날이 저문다. 노인 삼 남매는 얼굴 가득 환한 웃음 지으며 따스한 정을 가슴에 품고 자리에 들었다.


                                         강원도 강릉시 화이트캐슬리조트

📌 2일 차 여행 요약

  • 이동 코스: 숙소 출발 ⇒ 경포해변 ⇒ 초당순두부마을(아침식사) ⇒ 강릉고속버스터미널(외삼촌·이모 합류) ⇒ 선교장 ⇒ 경포대 ⇒ 오죽헌 · 율곡기념관 ⇒ 동양자수박물관 ⇒ 한우 전문점(저녁식사) ⇒ 숙소

  • 식사 및 맛집 정보:

  • 아침: 초당순두부마을 초당순두부 정식

  • 저녁: 한우령 한우프라자 (영동 청정지역 한우)

  • 숙소: 화이트캐슬 리조트


[엄마와 함께한 강원도 여행 3일 차] 낙산사의 경건함과 아늑한 단칸방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