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전복죽을 시키고 맛이나 보자며 물회도 한 그릇 추가했다. 아침이라 입맛이 껄끄러울 법도 하련만 그러기는커녕 목을 타고 미끈둥 잘도 넘어갔다. 남편과 나는 말할 것도 없이 그릇을 말끔하게 비웠고 노인 삼 남매도 달게 드셨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함께해서 기꺼운 마음
낙산사 후문 쪽으로 갔다. 들어가는 길은 그새 북적거린다. 한참을 기다려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매표소로 갔다. 노약자 감면 혜택 덕에 다섯 명이 들어가는데 표는 두 장만 끊었다.
태양은 불을 뿜어내듯 이글이글 타오르고 경내는 바글거리는 사람들로 시장통을 방불케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푹푹 찌는 더위로 쏟아지는 땀에 흠씬 젖어도, 사람들과 부딪치며 끈적거림이 그대로 와닿아도 개의치 않았다.
여행이란 그런 건가 보다. 그 어떤 것이라도 나누면 나눌수록 더 값지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들과 같은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 마음이 여유를 갖는 모양이다.
보타전 연꽃길을 지나 만난 해수관음상

초록빛 연잎 사이로 긴 꽃대 올리고 소담스럽게 연꽃이 피어있는 관음지를 지나 보타전으로 갔다. 법당에 들어간 엄마와 이모는 두 손 꼭 모으고 온 마음을 다해 절을 하셨다. 그 모습이 하도 경건하여 보는 나도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동양 최대 석불 해수관음상을 보러 가풀막은 아니지만 제법 기울기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길가에는 해당화 꽃 진 자리에 망울망울 맺힌 열매가 주홍빛으로 여물어 가고 있었다. 앙증맞은 모습이 자꾸만 눈길을 붙잡았다.
2005년 산불로 천년고찰 낙산사가 잿더미로 변했을 때 의연하게 자리를 지켜냈다는 해수관음보살상. 돌로 빚은 상인데도 그 모습이 기품 있어 보였고 잔잔한 미소에 온화함이 있었다. 우리는 석불 뒤편 가장자리에 손바닥만한 이파리가 이마를 맞대고 만들어놓은 널찍한 그늘 안으로 들어갔다. 바닷바람이 내달려와 온몸을 휘감고 도니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함이 전해져 하나같이 탄성을 질렀다.
그늘 밖에는 눈이 시린 햇살이 바늘 끝으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따갑게 내리꽂히는데도 해수관음보살 전에는 절 보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도의 간절함은 강렬한 빛으로 부서지는 태양조차 아랑곳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절경의 의상대와 홍련암 구멍 너머의 바다

의자와 한 몸이라도 된 듯 우리는 앉은 그대로 이야기꽃을 피우다 의상대로 갔다. 가히 절경이다. 바닷물이 철썩이는 절벽 위에 단아하게 앉아있는 의상대는 끝이 어딘지 모를 바다를 품고 있었다.
한낮의 열기로 기운 없어하시는 엄마가 정자에 앉아 쉬시는 동안 우리는 의상대 북쪽 절벽 위에 아슬하게 올라앉은 홍련암으로 갔다. 이 작은 암자는 의상대사가 용에게 수정 염주와 여의주를 얻어 그 해안 석굴 위에 지었으며, 바다에서 솟아오른 붉은 연꽃에 관음보살이 현신하였다 하여 불리게 되었단다.
홍련암에 이르니 사람들이 조신하게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법당 안에서부터 길게 늘어져 있었다. 법당 마룻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의상이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동굴을, 그곳으로 들이치는 동해바다를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가 우리 식구 대표로 들어갔다. 부처님 전 삼배하고 납작 엎드려 지름 10cm 정도의 구멍에 눈을 대고 낭떠러지 아래를 보았다. 그 작은 구멍 안에 또 하나의 바다가 있었다. 바위벼랑 틈으로 밀려들어온 바닷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물거품을 일으키고 빠져나간다. 짧은 시간이지만 깊은 바닷속 동굴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신비감이 들었다.
청간정의 아쉬움과 대포항의 풍성한 저녁
다음으로 남한 땅에서 가장 북쪽에 있다는 조선시대 정자를 보러 갔다. 관동팔경 중 하나로 예로부터 정철 등 조선시대 문인들이 찾아와 글을 썼을 만큼 심금을 울린 곳이 청간정이란다. 갯바위와 에메랄드빛의 바닷물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이곳에서 본 동해안의 풍경이 일품이라 하여 먼 걸음을 했던 것이다.
청간정으로 올라갔다. 솔밭길을 따라 오르니 소나무 몇 그루가 용틀임을 하고 서 있었다. 해풍을 맞아 견디느라고 용을 썼던 모양이다. 언덕에 올라서니 팔작지붕의 이층 누각이 떡 버티고 섰는데 그게 다였다. 낙산사에서 정체가 심한 도로를 빠져나오면서 흘려버린 시간과 한 시간 넘게 달린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이국적일 것도 없는 그저 동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에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대가 너무 컸었던 게다.

수산 시장도 구경하고 저녁식사도 할 겸 대포항으로 갔다. 비릿한 내음이 코끝에 스민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대게 집으로 들어갔다. 수족관에는 긴 다리 구부린 채 뒤엉킨 대게가 수도 없이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대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곁들이 음식으로 나온 생선회와 몇 가지 해물을 먹고 진열되어 있는 음식도 갖다 먹고 빨갛게 익힌 대게에 볶음밥까지 먹었다. 정말이지 실컷 먹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9평 방에서 나눈 훈훈함
흡족한 저녁식사를 끝내고 숙소로 갔다. 설악산 아래 지은 지 30년 되었다는 호텔이 내부도 가구도 너무 오래되었다 하여 선뜻 내키지 않았음에도, 마땅한 숙소를 잡지 못해 '그래도 호텔인데' 하며 예약을 했었다.
프런트에서 방 배정을 받는데 예약했던 방과 달랐다. 온돌방은 맞는데 평수가 너무 작았다. 칠칠치 못하게 이틀 동안 머문 숙소와 같은 평수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어쩌랴, 이미 모든 방은 예약이 끝났다니 아홉 평 온돌방에서 다섯 명이 다닥다닥 붙어 자는 수밖에.
방으로 들어갔는데 숨이 턱 막힌다. 작아도 너무 작다. 불빛마저도 우중충하여 답답한데 화장실은 겨우 몸 돌릴 정도다. 냉장고는 골드스타, TV는 아날로그. 그곳에는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이부자리를 펴고 한방에서 나란히 나란히 누워잤다. 좁아서 답답함은 있었지만 그보다는 되레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준 방으로 길이 기억되지 싶다. 언제 또 이런 자리를 누려볼 수 있을 것인가.
📌 3일 차 여행 요약
이동 코스: 숙소 출발 ⇒ [강릉 IC] 동해고속도로 ⇒ [하조대 IC] ⇒ 낙산사(아침식사/보타전·해수관음상·의상대·홍련암) ⇒ 속초 청간정 ⇒ 대포항 어시장(저녁식사) ⇒ 숙소
식사 및 맛집 정보:
아침: 낙산사 입구 전복죽 & 물회
저녁: 대포항 어시장 대게 & 회 (대포항 활어회/대게 전문점)
숙소: 호텔설악파크 (속초 설악산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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