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2026

[마라도 여행] 📋 [4편] 넷째 날: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와 송악산의 밤바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 앞바다 해돋이


1. 성산의 아침 해돋이와 수줍은 바다

성산 일출봉 앞 바다에서 해가 떠올랐다. 새벽녘에 깨어 하늘과 바다에 눈을 꽂아놓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데, 불그스름한 빛이 감돌더니 바닷속에서 해가 불끈 솟아오른다. 하늘과 바다는 금세 빨갛게 물이 들었다.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에 끌려 밤을 새우고 늦게 잠이 든 남편은 해가 뜬다는데도 잠에 취해 통 알지 못한다. 해는 하늘 높이 떠올랐고, 빛은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니 눈이 부시다. 커튼을 쳐놓고 살짝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서 해돋이를 보았고 전날 한라산에도 올랐으니, 바로 앞에 보이는 성산일출봉에 오르지 않는다고 그리 아쉬울 것 같지 않아 바닷가를 산책했다.

해 뜨기 전 밖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늘쩍지근하게 늑장 부린 것을 탓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니 얼굴을 바로 들 수가 없고, 햇빛 닿는 피부가 아침인데도 그새 따가왔다. 바닷가를 거닐다 바위 끝으로 내려갔다. 바다는 말갛디말간 속을 다 보여주었다. 그 맑음 속에 담기고 싶은 잔잔하고 평온한 아침. 며칠 더 머무르고 싶은 욕심이 요동을 친다. 이제 고작 하루밖에 남지 않아 그랬을 게다. 아름다운 섬 제주라서 그랬을 게다.


제주도 서귀포시 산방산 산방굴사


2. 산방굴사의 두 손 모은 소망과 마라도행 배

마라도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여객선 터미널로 가는 도중 산방굴사에 올랐다. 200여 m 높이의 깊고 크게 파인 굴속에 좌불이 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소망을 머리 조아리며 풀어놓았을 것이다. 켜켜이 쌓여 이루어졌을 소망의 산에서, 나도 모르게 모아진 두 손에 가족의 무탈을 담았다.

송악산 아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30여 분 걸려 마라도로 갔다. 멀리 형제섬과 산방산이 그림같이 펼쳐졌고, 청보리 축제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가파도가 가깝게 보였다.


3. 작달비처럼 내리는 햇살 아래, 마라도 한 바퀴


제주도 서귀포시 마라도


마라도는 들어가는 시간에 따라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정도였다. 마라도에 도착하여 아침 겸 점심으로 톳자장면을 먹고 나니 30분이나 지나있었다.

한 바퀴는 돌아봐야 하는데 걸음에 바퀴라도 달아야 할 모양이다. 아무리 작은 섬이라 해도 걷다가 머물고 사진 찍으며 지체하다 보면 금방 배 탈 시간이 될 터라 마음은 급하고 발도 따라 바삐 움직였다.

유난히 청청한 하늘에서 하얀 빛줄기가 작달비 내리듯 쏟아져 내린다. 그래도 좋다. 눈이 부셔도 좋고,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라도 좋다. 하늘빛과 물빛의 경계가 없는 푸른 바다를 보며 작은 성당을 지나고 등대 공원을 지나 할망당에 이르렀다. 시간이 적당히 남아 해안을 서성이는데, 절벽에 포로롱 날아오른 작은 새 한 마리의 노랫소리가 곱게 퍼졌다.


제주도 서귀포시 송악산 해안동굴

4. 송악산 둘레길에 남겨진 아픈 역사와 연보랏빛 수국

자리덕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나왔다. 송악산이 가까워지자 해안 절벽에 동굴이 여러 개 보였다. 일제강점기에 알뜨르 비행장 일대를 경비하기 위해 만든 인공동굴이란다. 천연 해식 동굴 2곳을 포함하여 17개의 동굴이 일본의 군사시설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저녁 식사 전에 송악산 둘레길을 걸어가자고 했다. 바닷가를 따라 나있는 데크길을 걸으며, 마라도 들어가면서 보았던 산방산이 바다 가운데 동그마니 떠있는 모습과 앙증맞은 섬 두 개가 다정하게 어깨를 겯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파도가 손에 닿을 듯 가깝고, 멀리 마라도가 아슴푸레 보인다. 송악산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경치다.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조금만 더 걷자 하며 앞으로 나아갔는데, 걸음은 우리를 중간 전망대까지 옮겨놓았다. "경치가 바람이 좋아 마냥 앉아 있었다"며 일어서는 노부부의 자리에 우리도 한참을 앉아서 경치에, 바람에 숨을 죽였다.

둘레길 일부분만 산책하자던 것이 바람 따라 해안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반바퀴나 돌아가 있었다. 기왕 간 걸음이니 간 길을 되돌아 나오는 것보다 가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 둘레길을 한 바퀴 다 돌아 나왔다.

몸은 고단했지만 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며 마음은 한결 편안하고 가벼워졌다. 탐스럽게 피어있는 연보랏빛 수국도 피로를 덜어내는 데 한몫을 톡톡히 했다.

산길은 짧았지만 울창한 숲이 만든 그늘진 길을 타닥타닥 내려오는데, 동굴진지가 여러 개 보였다. 일제에 의해 유린당했던 산하가 곳곳에서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모습에 시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주도 서귀포시 형제섬

5. 아랫목처럼 따뜻했던 밤바다 바위 위에서

슬슬 시장기가 돌기 시작하여 조금 이른 식사를 하고 바닷가 산책을 하자고 했는데, 식당은 많지 않고 딱히 먹을만한 음식도 없다. 식당가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참을 뜸 들인 후에야 남편은 전골 뚝배기를, 나는 전복죽을 먹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과자 두 봉지와 물을 사서 해안가로 갔다. 해는 두텁게 내려앉은 구름 속에 일찌감치 모습을 감추었지만 세상은 아직 환하게 밝아있었다. 형제섬에서 바람이 불어와 부드럽게 감긴다. 물살은 가만가만 철썩이고 물속은 유리알처럼 투명하여 금방이라도 바닷속에 뛰어들고 싶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위가 어슴푸레해지니 남편은 판판한 바위를 골라 눕고 나는 바위에 앉았다. 하루 내내 달구어진 바위는 아랫목처럼 따끈따끈했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둘 빛나기 시작했고, 불을 깜빡이며 날아가는 비행기는 별이 움직이듯 조용했다. 밤바다에 누워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고, 밀려오는 파도 소리 들으며 이 얘기 저 얘기 물어나르다가도, 지구의 시계가 멈춘 듯 찾아드는 고요 속에 한동안 젖어들기도 했다. 그렇게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대로 밤을 새워도 좋겠다 싶었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시간이 열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내일은 또 내일 일정이 있으니 아쉬움을 접고 이만 들어가자. 날은 금방 밝을 것이고, 제주 여행의 막을 내리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할 터이니.


[제주 여행]📋 [5편] 마지막 날: 달달했던 4박 5일 제주 여행을 마무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