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렀다. 아침 일찍 산에 오르면 덜 지치고 한결 여유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운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 그런대로 이른 시각이다. 항상 마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산, 시간만 된다면 언제라도 달려가고 싶은 산이었다. 어떠한 허물이나 과실도 다 덮어줄 것 같은 크고 너른 품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백제 가요의 아련한 노래부터 미당의 동백, 추사와 이광사의 현판 일화, 그리고 동학의 전설이 서린 마애불까지 깊은 역사와 이야기가 흐르는 고창 선운산 산행 기록을 정리해 본다.
1. 고창 선운산 & 선운사 개요 및 핵심 정보 요약
| 구분 | 주요 내용 |
| 위치 | 선운산 (도솔산)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심원면 일대 (높이 336m) |
| 탐방 코스 (1코스) | 선운사 ➔ 구자연의 집 ➔ 장사송·진흥굴 ➔ 도솔암 ➔ 내원궁·마애불상 ➔ 용문굴 ➔ 낙조대 ➔ 천마봉 ➔ 원점 회귀 (약 4.7km / 약 2시간 소요) |
| 주요 명소 | 선운사: 백파선사비(추사김정희), 천왕문 현판(이광사), 만세루, 대웅보전 도솔암/내원궁: 지장보살을 모신 내원궁, 동학농민운동 비기의 마애불 자연/유적: 600년 장사송, 용문굴, 낙조대, 송악 군락지(천연기념물) |
| 난이도 | 초중급 (봉우리 높이가 300m , 계곡 및 암릉 산책로 조성이 우수 |
2. 선운산가와 미당 서정주, 그리고 동백
선운사 입구에는 '선운산가비'가 서 있다. <고려사> '악지'에 기록되어 백제 가요의 단편을 볼 수 있는 자료인 <선운산가>는 가사는 없이 제목과 해설만 전해진다. 장사현에 사는 한 여인이 싸움터에 나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선운산에 올라 읊은 노래라고 한다.
미당 서정주는 <선운산가>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선운산가>
나라 위한 싸움에 나간 지아비
돌아올 때 지내도 돌아오지 안으매
그 님 그린 지어미 이 산에 올라
그 가슴에 서린 시름 동백꽃같이 피어
노래하여 구름에 맞닿고 있었나니
그때 누구신지 너무나 은근하여
성도 이름도 알려지진 안 했지만
넋이여 먼 백제 그때 그러시던 그대로
영원히 여기 숨어 그 노래 불러
이 겨레의 맑은 사랑에 늘 보태옵소서.
민족의 정서를 가장 세련된 우리말로 표현한 시인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친일문학인이라는 부끄러운 꼬리표를 달고 있는 미당. 그는 시 <선운사 동구에서>를 통해 선운사 동백의 정취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선운사 동구에서>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3. 사찰에 스민 서예가들의 일화: 추사와 이광사, 그리고 백파선사
등산 코스는 느긋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1코스로 정했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린다. 선운(禪雲)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兜率)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하니, 두 이름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식의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일심을 상징한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주문을 지나 부도밭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김정희의 해서체 백파선사비는 글씨에 문외한인 눈으로 봐도 강한 힘이 느껴진다. 두껍게 쓴 부분과 흘러내린 듯 가늘게 쓴 부분의 조화가 빼어나다.
생전 신랄한 교리 논쟁을 벌이며 백파를 거침없이 몰아붙였던 추사 김정희는, 백파가 입적한 뒤 그를 최고의 고승이라 칭하며 이 비문을 썼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얄궂은 전설도 전해진다. 추사가 '돌대가리(石頭)'라는 호를 지어 주자, 백파는 부처님과 불상이 모두 돌이라는 점을 떠올리며 감사히 거두었고, 훗날 이 호는 큰스님 박한영에게 이어졌다고 한다.
천왕문의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현판은 조선 후기 명필 이광사의 글씨다. 추사는 유배길에 대흥사에 들러 이광사의 현판을 내리고 자신이 쓴 글씨를 걸게 했으나, 9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이광사의 현판을 걸라고 했다. 유배 세월 동안 자만을 내려놓고 이광사 글씨의 진가를 비로소 인정하게 된 까닭일 게다.
4. 민초들의 바람이 담긴 사천왕상과 만세루
사천왕은 화려한 보관과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호통치는 표정을 짓고 있어 위압감을 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익살스럽고 귀엽기까지 하다.
재미있는 것은 발밑의 모습이다. 동방천왕 발밑에는 쪽을 진 조선의 여인이 요염한 표정을 짓고 있고, 서방천왕 발밑에는 야비한 탐관오리가 무릎을 꿇고 있다. 미약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탐관오리와 음녀를 사천왕의 힘을 빌려 벌하고 싶었던 당시 목공의 인간적인 바람이 투영된 듯하다.
천왕문을 지나 만세루에 다다랐다. 대웅전과 마주보게 개방되어 있어 설법을 할 때 강당으로 활용되었다는 만세루는 볼품없거나 삐뚤어져 활용 가치가 떨어지는 목재를 사용해 지었다고 하는데, 소박하면서도 자연과 한 몸처럼 어우러졌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라는 진리가 건물 그대로에 담겨 있는 듯했다.
대웅전 뒤편 산기슭에는 동백나무 군락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푸른 잎뿐이지만, 내년 봄이 되면 붉게 물들어 있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 대웅전에는 중앙에 비로자나불, 양옆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부처님을 대적광전이 아닌 대웅보전에 모신 이유가 따로 있는지, 부처님을 보좌하는 불상도 대개는 보살상인데 선운사 대웅보전에는 부처님 세 분이 나란히 앉아 계신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산전 뒷면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았다. 중국 요순시대에 등장했다고 전해지는 상상의 짐승 해태는 사자와 비슷한 모습으로 머리 가운데에 뿔이 있어 해치라고도 불린다. 해치는 순우리말 고어로 해님이 파견한 벼슬아치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해태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한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사람이 다투는 것을 들었을 때는 옳지 않은 사람을 받는다고 한다. 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간주되어 궁궐 등의 건축물에 장식되기도 하는데, 해태는 광화문 앞과 경복궁 근정전의 처마 마루에 놓여 있어 전각 안에서 정사를 돌보는 임금의 공평 무사를 비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5. 장사송과 마애불, 그리고 눈시울을 적신 도솔천 내원궁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을 지나니 600살 먹은 장사송이 반긴다. 땅 위 3m 지점에서 부챗살처럼 갈라진 8개의 가지는 한반도 8도를 상징한다고 한다.
도솔암 대웅전 처마 밑에는 지전 다발과 만장이 걸려 있어 상여를 떠올리게 하는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오솔길 옆 단단하게 익어가는 동백나무 열매를 보며 도솔천 내원궁으로 올라갔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이 모셔진 법당에서는 스님의 염불 소리와 신도들의 절이 이어지고 있었다. 순간 아버지 49재 때 지장보살을 외우며 눈물 흘렸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한전 옆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뚱한 표정이 정겹다. 명치 부근의 비기를 꺼내면 천지가 개벽한다는 전설 때문에, 동학농민운동 당시 손화중이 민심을 모으고자 비기를 꺼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농민들의 염원과 달리 혁명은 실패로 끝났고 통한의 세월이 이어졌지만, 민초들의 간절한 희망이 만든 전설은 여전히 바위에 새겨져 있다.
6. 바람 부는 능선과 자연의 순리
이정표에서 '소리재'라는 명칭을 보고 내심 반가운 마음에 예정에 없던 다리품을 팔았다. 고창이 신재효, 진채선, 김소희 명창을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이기에 소리하기 좋은 고개일 것이라 기대했으나, 그저 평범한 고개였다.
낙조대로 향하는 그늘진 능선에 앉아 다리를 쉴 때, 바람이 '우우'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맡기며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니, 자연의 순리에 거스르지 않는 삶의 지혜가 느껴졌다.
이무기가 도망치며 뚫었다는 용문굴(드라마 <대장금> 촬영지)을 거쳐 300m 남짓의 부담 없는 봉우리들을 쉬엄쉬엄 올랐다. 계곡 물길을 따라 걷는 길은 지루할 틈 없이 상쾌했다.
7. 매미의 인고와 생의 무게, 그리고 길을 마치며
하산길, 땅에 뚫린 손가락 크기의 구멍들을 보았다. 매미 애벌레가 올라온 자리가 분명하다. 땅속에서 3년에서 7년이라는 어둡고 모진 세월을 견디고 나와, 고작 한 달 남짓 수컷은 온 힘을 다해 목놓아 울다 생을 마감한다.
그러다 나무에 붙은 채 날개돋이조차 해보지 못하고 죽은 매미를 발견했다.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우리네 고단한 인생을 보는 듯해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주차장 옆 계곡 절벽에는 천연기념물 제367호인 송악 군락지가 무성하다. 소가 잘 먹어 '소밥나무'라고도 불리는 푸른 덩굴을 뒤로하고 돌다리를 건넜다.
눈부신 햇살 아래, 개울에서 물놀이에 흠뻑 빠진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청량한 소리에 산행으로 노곤했던 심신이 한 번에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