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에 이어 셋째 날 아침에도 동쪽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포항 여행의 마지막 날을 시작했다. 화진해수욕장을 지나 호미곶으로 향하는 해안길을 따라, 신라의 전설이 서린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부터 한반도 동쪽 끝 호미곶, 조선 시대 선비들의 아픔이 서린 장기 유배지와 문무대왕릉까지 이어지는 2박 3일 경북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정리해 본다.
1. 포항 호미곶 & 장기 유배지 개요 및 핵심 정보 요약
| 구분 | 주요 내용 |
| 여행 지역 | 경북 포항시 남구(호미곶·구룡포·장기) 및 경주시 문무대왕면 |
| 드라이브 코스 | 화진해수욕장 ➔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 호미곶 ➔ 925번 해안도로 ➔ 장기현 유배지 ➔ 장기읍성 ➔ 감은사지 ➔ 문무대왕릉 |
| 주요 명소 |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삼국유사 전설·동해 조망), 호미곶(상생의 손·데크길), 장기현 유배지(선비 유배지), 장기읍성(군사 요충지), 문무대왕릉·감은사지(문무왕 유적) |
| 여행 팁 | 925번 지방도는 바다와 붙어 달리는 최적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이므로 내비게이션 우회 안내 대신 해안길 직진 권장 |
2. 동해의 붉은 일출과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화진해수욕장을 지나 호미곶으로 향하는 길에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 들렀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으나, 왠지 급하게 조성된 듯 예스러움이나 시대적 분위기가 깊게 느껴지지 않아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신라 시대,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바위(거북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넘어가 왕과 왕비가 되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한다. 기이하게 여긴 신라 아달라왕이 신하를 보내 부부를 다시 데려오려 했으나, 연오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하늘의 뜻이니 돌아갈 수 없다"며 세오녀가 짠 비단을 건네주었고, 이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 신라로 돌아와 그 비단으로 제사를 올리자 비로소 해와 달이 예전처럼 빛을 되찾았다고 전해진다.
그 비단을 어고에 보관하며 '귀비고(貴妃庫)'라 불렀고, 제사를 지내던 곳을 '영일(迎日, 해를 맞이함)' 또는 '도기야'라 불렀다. 바로 『삼국유사』 「기이」 편에 전해 내려오는 정겨운 전설의 현장이다.
3. 세찬 바닷바람의 호미곶, 그리고 해안도로 드라이브
한겨울 어머니와 다녀간 뒤로 다시 찾은 호미곶. 파도를 몰고 오는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바다 위 나무데크길에 섰다. 바다 한가운데 솟은 '상생의 손'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생각보다 매섭지 않아 하루 종일 머물라 해도 거뜬할 듯싶었다.
힘차게 달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에 슬그머니 발목을 내주며 붙잡아보라 했건만, 눈치 없는 뱃속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하는 수 없이 발목을 빼고 나와 근처 식당에서 허기를 달랜 뒤 다음 목적지인 장기 유배지로 향했다.
한반도의 호랑이 꼴 꼬리뼈에 해당하는 호미곶 둘레길을 돌아 925번 해안도로를 달렸다. 넓은 큰길로 자꾸 돌아가라며 번번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조바심 내는 내비게이션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구룡포를 지나 장기현 유배지까지 바다와 바짝 붙은 좁은 해안길을 신나게 달렸다. 차창 밖으로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동해 바다의 푸른 기운이 드라이브의 흥을 한껏 돋워주었다.
4. 형벌의 땅, 장기 유배지에서 만난 우암 송시열
조선왕조 500년 동안 100명이 넘는 선비와 정객들이 귀양을 갔던 장기현. 다산 정약용, 우암 송시열 같은 당대의 거목들도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뒤로는 첩첩산중이 막아서고 앞으로는 거친 동해 바다가 둘러싸고 있는 동해안의 오지였기에 유배지로 자주 쓰였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 장기 유배지에서 아내에게 남긴 글을 읽어내려가다 마음이 묵직해졌다.
아, 나와 당신이 부부로 맺은 지가 지금 53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의 가난함에 쪼들리어 거친 밥도 항상 넉넉하지 못하여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던 그 정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쌓은 앙화 때문에 아들과 딸이 많이 요절하였으나, 그 슬픔은 살을 도려내듯이 아프고 독하여 사람들이 견디어 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근세에 이르러서는 내가 화를 입어서 당신과 떨어져 산 지가 이제 4년이 되었는데, 때때로 나에 대해 들려오는 놀랍고 두려운 일들 때문에 마음을 녹이고 창자를 졸이면서 두려움에 애타고 들볶이던 것이 어찌 끝이 있었겠습니까.
끝내 몸이 지쳐 병에 걸려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시종을 따져보면 나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습니다. 타고난 운명이 좋지 않아서 이같이 어질지 못한 사람과 짝이 되었으니, 당신이야 비록 원망을 않는다손 치더라도 내 어찌 부끄러운 마음을 이겨 내겠습니까.
하도 구구절절 애절하고 처절하여, 당시 그가 느꼈을 유배지에서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아내를 향한 미안함이 수백 년의 세월을 넘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5. 장기읍성을 거쳐 문무대왕릉으로 향하는 길
유배지를 나와 근처의 장기읍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려시대(1011년, 현종 2년) 여진족의 해안 침입에 대비해 처음에는 흙으로 쌓았으나, 조선 세종 때(1439년)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석성으로 다시 고쳐 쌓은 곳이다. 높이 100m 남짓한 산 위에 위치하여 산성의 역할도 겸했던 동해안의 주요 군사기지이자 관아터였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내려다보는 장기면 일대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장기읍성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이견대에 들러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문무대왕릉(대왕암)을 바라보았다.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바다는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6. 2박 3일 경북 여행을 마치며
산과 바다를 오가며 폭포수가 시원하게 떨어지는 계곡을 따라 걷고, 파도가 넘실대는 해안도로를 따라 신나게 달렸던 2박 3일의 숨 가쁜 여정.
1일 차 청송 주왕산과 주산지의 오색 단풍, 2일 차 포항 내연산 청하골의 12폭포와 보경사, 그리고 3일 차 호미곶과 장기 유배지, 문무대왕릉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걷고 또 걷고, 달리고 또 달렸으나 돌아서는 발걸음 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산과 바다가 내어준 풍경들이 벌써 그리워 다시 또 걷고 싶고, 다시 또 달리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