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2026

[해남 두륜산] 대흥사 십리숲길·가련봉·일지암 다도 기행 및 코스 정리


전남 해남군 두륜산 입구 계곡


어느 봄날, 이웃나라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나라 전체를 뒤덮어 비상이 걸렸다. 연일 떠들어대는 주의 요망에 그저 방구석에 눌러앉아 있기에는, 연녹색 이파리가 가지마다 푸르름을 빛내는 참 좋은 봄날이다. 산이라 괜찮을 게다. 산이어서 괜찮을 게다. 미세먼지 따위에 밀려 하루를 구들장에 맡길 순 없었다.

출발길, 두텁게 층을 이룬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괜히 주의보가 내려진 게 아니다 싶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줄기도 마다하고 들판에 우뚝 서서 그 위용을 자랑하는 월출산마저 지나치는 길에 겨우 형태만 보일 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가히 겁나는 잿빛 세상이었다.

미세먼지를 뚫고 찾은 한듬 두륜산, 그리고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차향이 느껴지는 일지암까지의 여정을 정리해 본다.

1. 해남 두륜산 & 대흥사 개요 및 핵심 정보 요약

구분주요 내용
위치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북일면·구산면 일대 (주봉 가련봉 703m)
산행
코스
대흥사 주차장 ➔ 십리숲길 ➔ 대흥사 ➔ 북미륵암 ➔ 오심재 ➔ 노승봉 ➔ 가련봉(정상) ➔ 두륜봉 ➔ 진월암 ➔ 일지암 ➔ 대흥사 ➔ 주차장 (원점 회귀)
이름의 유래원래 순우리말 '한듬'('듬'=산, '한'=크다)에서 유래하여 대듬, 대둔산(大芚山)으로 불림. <대둔산지>에 따르면 중국 곤륜산과 백두산에서 한 자씩 따온 명칭이며, 일제강점기 '頭輪山'을 거쳐 현재 '頭崙山'으로 표기
주요
명소/특징
대흥사(대둔사): 사천왕문이 없는 사찰, 산등성이 와불 형상, 표충사
북미륵암: 용화전 마애여래좌상(보물)
일지암: 초의선사가 40여 년간 머물며 다신전을 집필, 다도(茶道)의 성지
난이중급 (가련봉~두륜봉 구간 암릉과 암벽 데크/철계단이 다소 험하므로 주의)

2. 해남 구림리 십 리 숲길, 차분해지는 발걸음

해남 구림리 십 리 숲길에 들어섰다. 오랜 시간 제자리를 지켜냈을 떡갈나무, 벚나무, 단풍나무들이 드문드문 하늘을 가렸다. 숲속으로 들어오니 맥 떨어진 미세먼지가 잠시 주춤거린다.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산이 주는 청량함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두륜산의 본래 이름은 산이라는 뜻의 '듬'에 크다는 뜻의 '한'이 붙은 '한듬'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한자어와 섞여 '대듬'이라 불리다가 '대둔산(大芚山)'이 되었고, '한듬절'은 '대듬절'을 거쳐 '대둔사'로 바뀌었다. <대둔산지>에 의하면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의 줄기가 동쪽으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거기서 뻗은 줄기가 태백산의 끝이라 하여 곤륜산과 백두산에서 한 글자씩을 딴 이름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전국 지명을 새로 표기하면서 머리 두(頭), 바퀴 윤(輪)의 '두륜산(頭輪山)'이 되었다가, 지금은 산 봉우리 윤(崙) 자를 쓴 원래 이름(頭崙山)을 되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매표소가 있는 입구 현판에만 '頭崙山'이라 써 두었을 뿐, 대흥사 입구 현판에는 아직도 '頭輪山'이라 적혀 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일인데다, 현판의 한자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 안이하게 생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한듬. 입에 찰싹 들러붙는 순우리말이 참 좋다. 한듬, 대듬절, 한듬, 대둔사... 가만히 입속으로 되뇌어본다. 뜻도 말도 잊혀간 한듬이 입안에 맴돈다.

3. 사천왕문이 없는 대흥사와 와불의 품


전남 해남군 두륜산 대흥사

대둔사(대흥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두륜산 여러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골이 합쳐져 큰 계곡을 이룬 '너부내'를 따라 오래 묵은 나무들이 연륜을 자랑하는 십 리 숲길을 오르면, 그 사이 몸에 붙은 악귀가 모두 떨어져 나가고 마음에도 평온함이 깃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탈문을 지나니 사방으로 둘러서 솟은 산이 둥글넓적하게 원을 그리며, 낮은 담장에 둘러싸인 당우들을 안온하게 감싸고 있다. 산등성이에는 신기하게도 영락없는 와불이 길게 누워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여러 당우들과 표충사까지 둘러보며 한 시간 넘게 대흥사를 어슬렁거리다가 본격적인 산행길로 접어들었다.

산행은 북미륵암 ➔ 오심재 ➔ 노승봉 ➔ 가련봉 ➔ 두륜봉 ➔ 진월암 ➔ 일지암 ➔ 대흥사 ➔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4. 북미륵암의 자애로운 마애불, 그리고 널브러진 누렁이


전남 해남군 두륜산 북미륵암 마애불

한바탕 땀을 쏟아내고 북미륵암에 이르니, 덩치 큰 누렁이 한 마리가 토방에 납작 엎드린 채 힐끗 한번바라보곤 그만이었다.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 관심도 없다. 세상을 달관이라도 했는지 그저 자울자울거리고 심드렁한 낯빛이다. 속으로 '그래, 네 팔자가 상팔자로구나' 하며 웃음 지었다. 마애불을 보러 용화전으로 들어갔다.

선조들의 숨결이 천년의 세월 동안 면면히 이어져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한 땀 한 땀 들인 정성이 은은하게 퍼져 법당 안은 자애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음에 이끌려 들어간 법당 안에서 두 손을 모으고 서성이다가, 한참을 미적거리다 밖으로 나왔다.

5. 산을 향한 인간의 욕심, 그리고 자연의 황홀함


전남 해남군 두륜산 정상 - 두륜봉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와 북일면 흥촌리에 걸쳐있는 두륜산은 소백산맥의 남단에서 다도해를 바라보고우뚝 솟아 있다. 주봉인 가련봉(703m)을 비롯하여 두륜봉, 고계봉, 노승봉, 도솔봉, 혈망봉, 향로봉, 연화봉 등 8개의 봉우리가 부드러운 능선을 이룬다.

가련봉에서 두륜봉으로 가는 길은 나무 데크가 설치되지 않았으면 엄두도 나지 않았을 험한 길이다. 예전에는 바위에 박아놓은 철 발판을 밟고 손잡이에 의지해 올랐을 것이다. 편하고 안전하게 오르고 싶은인간의 정상을 향한 열망은 산에 각종 시설물을 설치하게 했고, 덕분에 이전보다 수월하게 정상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산은 끊임없이 부서지고 신음하는데, 산꼭대기에 올라서고 싶은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바라만 봐도 좋은 것이 산일 진대, 굳이 올라가서 보라고 친절하게 길까지 내어주었으니 오르지 않으면 서운할 터. 이 또한 굳이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는 핑계다. 나 역시 욕심을 버리지 못해 자꾸 산에 오른다.

하지만 산꼭대기에 서면 느낌도, 기분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도 모두 황홀함 그 자체다.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 사진으로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오롯이 펼쳐지는데, 어찌 오르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6.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 차향으로 피어난 깊은 우정

산봉우리마다 흘러내린 줄기가 부드럽다. 열두 폭 초록 치마를 활짝 펼치고 다소곳이 들어앉은 대흥사를 굽어보다가, 곡예하듯 건너온 바위 봉우리의 아찔함에 진저리를 친다. 그래도 지나온 길이라 스릴이 만점이었다며 스스로 최고 점수를 매기고, 진월암을 지나 일지암으로 향했다.

일지암은 초의선사가 40여 년간 차와 선으로 수행한 곳이다. 초의는 이곳에서 차의 효능과 품질, 다도등을 정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차 전문서인 『동다송』을 저술하고 『다신전』을 정리했다. 초의선사는 불문에 몸담고 있었음에도 유학과 도교 등 당대의 지식을 섭렵했고,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 등 내로라하는 학자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초의에게 차와 선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차 한 잔에서도 '선열(禪悅)'을 맛본다고 했으며, 차는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이라 하여 '무착바라밀'이라 부르기도 했다. 쇠퇴해가던 조선의 다도는 초의선사가 정리한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바탕으로 다시금 중흥을 맞이하게 된다.

유불의 경계를 넘어 도탑게 우정을 이어간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 두 사람은 차를 나누며 향기도 함께 나누었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 가는 길, 일지암에 들러 초의와 하룻밤을 묵으며 애틋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유배를 떠나는 기구한 운명 앞에서, 추사는 평생지기 초의에게서 깊은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이후에도 초의는 험난한 바다를 건너 제주도로 추사를 찾아가 1년여 동안 함께 머물렀다. 얽매인 몸과마음으로 고단하던 시절, 마음을 알아주는 벗과 함께 나눈 그 시간들은 추사에게 참으로 값지고 가슴따뜻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운 벗과의 소통, 그리고 변함없는 제자의 충심에 힘입어 추사는 세상에대한 울분을 삭이고 명작인 <세한도>를 남길 수 있었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뜻의 시문을 써서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주었다고 하는 그 <세한도>를 말이다.

7. "차나 어서 보내시오" — 추사의 투정과 삶의 온기

초의와 추사는 서신과 차를 주고받으며 그리움을 달랬는데, 차를 기다리는 추사의 마음이 어찌나 절박했던지 편지에 귀여운 투정을 부리고 섣부른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나는 스님을 보고 싶지도 않고 편지도 보고 싶지 않으나, 다만 차와의 인연만은 차마 끊어버리지 못하여 또 차를 재촉하오. 편지도 필요 없고 밀린 차 빚이나 한꺼번에 챙겨 보내되, 다시는 지체함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다가도 초의스님이 차를 보내오면 "과천의 샘물로 차를 달여 시음하니 과연 천하 제일의 차다."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추사가 초의와 그의 차를 얼마나 아꼈는지 여실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8. 하산길, 마음속에 고이는 잔향


전남 해남군 두륜산 일지암

일지암 툇마루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초의와 다산, 추사가 함께 차를 마시고 시를 논하며 마음을 나누었던 그 자리에서, 그들의 다정한 모습과 훈훈한 정을 상상해 보았다.

한 시대를 살며 굴곡진 삶으로 생사를 넘나들었을지언정, 마음을 툭 털어놓고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떨어져 있으면 사무치게 그리워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 그런 벗이 있었으니 그 또한 얼마나 복된삶이었을까.

해는 이미 기울어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하산하는 길, 무성하게 자라 하늘을 가린 초록빛 이파리들이 어둠 속에서 더욱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