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나들이 : 비에 젖은 바다와 울돌목의 소용돌이
천둥 번개와 함께 시작된 여행
아침에 눈을 뜨니 하얀 불빛이 번쩍 허공을 가르고, 우르릉 쾅 천둥소리에 천지가 요동을 쳤다. 계속 내리는 비로 엄마와의 여행이 자꾸만 미루어지는데, 하늘은 비를 그칠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나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도 빗줄기에 묶여 집안을 서성이다가, 줄기가 다소 가늘어질 때쯤 겨우 집을 나섰다. 비 오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나름의 운치가 있을 성싶어, 사람도 차도 주춤거리는 빗속을 뚫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장대비가 사정없이 퍼붓고, 설상가상으로 뿌연 안개까지 내려앉아 시야를 가렸다. 운전하는 남편은 초긴장 상태로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있는데, 온통 뿌옇게 물든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마음을 빗속으로 내보내 흠씬 물을 맞으며 장난을 쳤다.

목포 유달산 노적봉에서 울돌목으로
목포에 들어서자 퍼부어대던 비의 기세는 간데없고 가랑비가 바람에 실려 흩뿌려지고 있었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엄마와 팔짱을 꼭 낀 채 유달산 노적봉을 돌아 전망대에 올랐다. 그러나 비가 들이치는 팔각정은 의자마다 물기가 흥건하여 앉을 수 없었고, 푸른 바다도 시내도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어 온통 잿빛이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차분히 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곧바로 울돌목으로 향했다. 영화 '명량'을 본 직후였기에 엄마가 직접 울돌목을 보시면 더 실감 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울돌목의 물살과 마음을 울린 눈물
울돌목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생선매운탕과 초밥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우수영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비를 몰고 와 쉼 없이 뿌려댄 탓에 하늘도 바다도 흠뻑 젖어 있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둔탁하고 물먹은 발걸음이 무거워, 비에 젖은 정자에 올라 잠시 머물렀다.
빙그르르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보며 무척 신기해하신 엄마는 연대순으로 정리된 장군의 일대기를 찬찬히 읽어보셨다. 한편으로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세월호에 희생된 꽃 같은 아이들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리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셨다.
바닷길 저 아래 어디쯤에서 그토록 가슴 에이는 고통 속에 떨고 있을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시며...
빗속의 작은 불편함, 그리고 아쉬운 하루의 마무리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얕게 파인 곳에 고인 빗물을 비켜갈 수 없어 그냥 찰싹거리며 걸어 나오는데, 빗물과 함께 샌들 속으로 들어간 흙이 발가락 사이에 끼어 걷기가 편치 않았다. 아주 작은 불편함에 불과한데도 신경이 쓰였다.
빗속 나들이가 힘에 부치셨는지 엄마가 많이 피곤해하셨다. 해남 땅끝에서 하룻밤 자고 가려던 계획을 거두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훗날 날이 쾌청할 때 엄마와 다시 나들이를 나오면 될 일이었으니까.
두 번째 나들이 : 담양 죽녹원의 청량함과 환한 미소
하늘이 열리고 가을 문턱에 서다
모처럼 하늘이 파란 얼굴을 내밀었다. 하얀 구름도 몽실몽실 제각각의 모양을 뽐냈다. 한낮의 햇볕은 따가움을 떨쳐냈고 바람도 더위를 덜어냈다. 계절은 어느새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었다.
죽녹원 대숲길에서 맞잡은 두 손
엄마와 둘이 담양 죽녹원으로 향했다. 곧게 쭉 뻗은 대나무는 하늘을 찌를 기세로 높이 솟아 있었고, 늠름하게 늘어서서 수려한 자태를 자랑했다. 눈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 대나무가 꼿꼿이 서서 짙은 녹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100년 만에 꽃을 피우고 나면 그 자리에 어린 생명이 싹트도록 스스로 고사한다는 대나무. 부모가 자식을 향해 바치는 사랑과 희생이 식물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시는 엄마와 손을 꼭 잡고 빽빽한 대나무 숲길을 걸었다. 어릴 적 엄마 손안에서 꼼지락거리던 딸의 손이 이제는 엄마의 손을 잡고 걷는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딸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고 걸으셨다.
대나무 줄기를 따라 햇빛에 반짝이는 댓잎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쉬어보고, 바람결에 댓잎 사각거리는 소리를 귀에 담았다. 조각조각 비치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찡긋 감아보기도 하면서 대숲이 주는 청량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내려왔다.
대통밥의 소소한 기쁨과 대나무 박물관
점심으로는 대통밥을 먹으러 갔다. 깔끔한 상차림이 식욕을 돋우었고, 대나무 통에 찐 쫄깃한 밥과 죽순 반찬을 맛나게 먹었다. 대나무 통은 일회용이라 가져가도 된다기에 필통으로 쓰면 좋겠다 싶어 엄마 것과 내 것 두 개를 챙겨 나왔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대나무 박물관에 들렀다. 엄마는 옛 생각이 나시는지 유심히 관람하셨다. 대나무로 짠 생활용품부터 장식품까지 세세히 둘러보시더니, 오길 잘했다며 환하게 미소 지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환하게 웃음 지었다.
세 번째 나들이 : 보성 대원사, 깊은 은혜와 참회의 길
벚꽃나무 길을 지나 대원사로
셋째 날은 보성 대원사로 향했다. 대원사로 가는 길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길이다. 주암호 상류 죽산교 앞 삼거리에서 죽산천을 따라 5.2km에 걸쳐 벚꽃나무가 늘어서 있는데, 봄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벚꽃 시즌이 아니더라도 산과 산 사이 개울을 따라가는 길에 진초록 벚꽃나무가 무성한 이파리를 너울거리며 환영해 주어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맨발로 땅의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음미하며 걷고 싶은 길이었다. 엄마는 창문을 내리고 깊게 산공기를 마시기도 하고, 팔을 뻗어 바람을 가르며 "산도 나무도 개울도 어쩜 이렇게 예쁘냐"고 감탄을 연발하셨다.

티베트 박물관과 부모공덕불
대원사 옆, 티베트 사원 양식으로 지어진 티베트 박물관에 들렀다. 한국 안의 작은 티베트 같은 그곳에서 티베트의 문화와 종교,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장례 절차인 '조장' 사진을 보며 엄마는 생소함에 진저리를 치시기도 했다. 한편 죽음 체험관에 놓인 열린 관을 보고 한 발을 들여놓으려던 중년 남성과, 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 아들의 옷깃을 잡아당기던 노모의 모습에 소소한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대원사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앞면은 눈물 흘리는 아버지, 뒷면은 가슴에 맺힌 것이 많은 어머니를 모신 '부모공덕불' 석조불감을 만났다. 부모에 대한 불효와 원망을 참회하고 깊은 은혜를 깨닫게 해주는 불상이었다. '집안에 부처님이 계시니 바로 부모님이다'라는 문구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어린 영혼들을 위한 모정의 기도
대원사는 태아 영가 천도를 봉행하는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엄마는 법당에 들어가 온몸을 모아 극진하게 절을 올리셨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더니 이내 줄줄 흘러내렸지만, 엄마는 아랑곳없이 절을 계속 이어가셨다.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스러진 어린 영혼들이 지장보살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삼도의 강을 건너길 기원하신 것은 아니었을까. 빨간 모자를 쓴 동자승 인형들을 바라보며 엄마는 마음이 많이 시리다고 하셨다.
여행을 마치며 : 오롯이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
엄마와 함께한 휴가가 끝나가고 있었다. 거창한 여행은 아니었고 잠깐씩 다니러 가는 정도에 그쳤지만, 엄마는 큰딸과 함께라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좋아하셨다.
백중날 절에 가신다는 엄마를 모시고 백중 전날 친정으로 향했다. 하룻밤 자고 돌아오는 길이 마음 한구석 편치만은 않았지만, 짧은 시간 엄마와 오롯이 함께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했고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