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2026

[장흥 수인산] 홈골제·수인산성 노적봉·병풍바위 당일치기 산행 및 코스 정리

전남 장흥군 수인산


느지막이 나선 산행길. 서둘러 나섰으면 좋았을 걸 싶다가도, 그래도 이렇게 나섰으니 다행이라며 우리는 히죽거리며 산을 향해 내달렸다.

새해가 밝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서 살까'라는 화두를 안고 남녘땅을 돌아보던 때가 있었다. 그때 들렀던 강진 병영의 마을은 사람도 소리도 없이 고즈넉하기만 했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바로 그 마을 뒤편에 자리한 수인산이다.

전남 장흥과 강진의 경계에 우뚝 솟아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수인산의 봄빛 산행 기록을 정리해 본다

1. 장흥 수인산과 수인산성 개요 및 핵심 정보 요약

구분주요 내용
산명/위치수인산(수인산성) /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강진군 병영면 경계
산행 코스홈골제 주차장 ➔ 홈골 ➔ 북문 삼거리 ➔ 노적봉(정상 561m) ➔ 느티나무숲 삼거리 ➔ 남문(병풍바위) ➔ 서문 ➔ 수인사 ➔ 홈골제 (원점 회귀)
소요시간약 8~9km / 약 4시간 소요
산의 특징 및 유래
산꼭대기에 천연 평탄지와 많은 샘터가 형성되어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
왜구 침입 방지를 위해 축조된 수인산성의 병풍바위와 옛 우물터, 기와흔적
난이도 중급 (기본 등산로는 정비, 일부 바위 암릉 탐방 구간은 가파르므로 주의

2. 두목골, 도둑골, 그리고 홈골의 봄바람

저수지 둑 안쪽의 작은 주차장 한켠에 차를 세워두고, 홈골제 갓길을 돌아 감나무 밭을 지나 홈골로 향했다. 수인산 가는 길에 '두목골'이 있길래, 진짜 두목이 살았던 골짜기인가 싶어 웃으며 지나쳤는데 홈골로 가는 갈림길에는 '도둑골'도 있었다. 천혜의 요새라더니 옛날엔 도둑들도 들어와 살았던 모양이라며 혼자 넘겨짚어 보았다.

홈골은 깎아지른 절벽과 비스듬히 몸을 젖힌 바위산 사이에 포근히 들어앉아 있다. 홈이 깊게 파여 있어 홈골이라 이름 붙은 듯하다. 막 움트기 시작한 새순에 기운을 불어넣고, 어느새 깨어나 까불거리는 연둣빛 이파리를 토닥이며 골짜기를 타고 바람이 불어왔다. 이마와 콧잔등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방울도 배슬배슬 꽁무니를 뺐다.

봄물 흐르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왔다. 개울로 내려가 잠시 귀를 기울이고, 바위마다 초록 옷을 입고 싱그러움을 물씬 풍기는 이끼를 바라보았다.

3. 봄꽃들과 눈인사 나누며 걷는 길


전남 장흥군 수인산

눈을 두는 곳마다 꽃들이 반갑게 웃음 지었다. 괴불나무꽃, 제비꽃, 생강나무꽃, 진달래꽃, 현호색, 동백꽃... 반경 1mm나 될까 말까 한 작은 풀꽃도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진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예쁘게 꽃을 피워낸 녀석들이 대견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눈인사를 건네다 보니, 어느새 걸음은 늘어지고 시간은 저만큼 앞서가 있었다.

아스라이 보이는 천 길 낭떠러지를 담벼락 삼아 올라갔다. 쉼 없는 오르막이 가파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꽃들과 노닥거리느라 힘에 부친 줄도 몰랐다.

4. 배트맨 흉내를 내며 오른 아찔한 비경

앞서가던 남편이 비경을 발견했다며 길도 없는 산속으로 거침없이 들어서더니, 길이 험하니 잠깐 쉬고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비경이라는데 까짓것 험한 것쯤이야 감수하자 싶어 얼른 뒤따라 올랐다.

가파르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무를 꼭 잡고 힘을 써야 올라갈 수 있는 길이었다. 산에 바짝 붙어 배트맨 흉내까지 냈다. 그런데 더 이상 잡을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옆으로도 위로도 잡을 만한 나무가 없었다.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남편과도 멀어졌다.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어쩌지?' 아무리 둘러봐도 딛고 오를 만한 바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다시 내려가야 하나?' 꼼짝없이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남편이 오르는 건 위험하니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렀다가 옆쪽으로 비켜서서 올라오라고 소리쳤다.

"자자, 힘내서! 옳지, 그렇지."

남편은 위쪽에서 손을 내밀며 응원해 주었다. 손을 잡고서도 선뜻 올라서지 못하고, 발 디딜 곳을 골라 단단히 다진 후에야 힘껏 용을 써서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러고도 남편의 손을 디딤돌 삼아 또 한 발짝 성큼 올라서고 나서야 겨우 제대로 된 산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사실 비경이랄 것도 없는 풍경이었지만, 눈 돌릴 겨를조차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거나 헛생각을 했다간 발을 잘못 디디거나 뿌리가 약한 나무를 잡아 산 아래로 곤두박질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앞서간 마음만 무턱대고 따라나섰다가 몸이 제대로 고생을 했다. 그래도 무사히 산에 오르고 나니, 아찔함보다는 스릴 넘치는 재미를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5. 수인산성 정상 노적봉과 옛 사람들의 흔적


전남 장흥군 수인산 정상 - 노적봉

거칠게 산을 타고 오르니 숲속의 작은 오솔길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북문 삼거리로 가서 이정표를 확인하고 수인산의 정상인 노적봉에 올랐다. 사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억불산, 사자산, 제암산, 천관산, 월출산과 탐진호의 풍경을 한눈에 담고 남문으로 향했다.

느티나무숲 삼거리에 들어서니 깨진 기와조각과 커다란 맷돌, 그리고 물이 자작하게 차 있는 사각 모양의 우물 등 옛사람들이 살다 간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것 같은 제법 넓은 평탄지도 그곳에 있었다.

'천혜의 요새'라는 말이 비로소 실감 났다. 산 자체가 커다란 바윗덩어리인 듯, 병풍을 두른 것 같은 바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6. 작은 샘터에서 발견한 새 생명의 기운과 하산길


전남 장흥군 수인산

서문으로 내려가자 가느다란 물소리가 들려왔다. 바위 틈에서 흘러나온 물이 쫄쫄거리며 흐르는 작은 샘이었다.

봄빛으로 물든 실가지와 파란 하늘이 비치는 작고 둥근 샘터에서는 새로 깨어날 생명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부지런한 올챙이 한 마리가 여린 몸을 파닥이고, 몽글몽글 모여 있는 까만 개구리알도, 팔찌처럼 생긴 알주머니에 들어있는 수십 개의 도롱뇽알도 여차하면 알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

조만간 이 산도 꼼지락거리는 새 생명들의 생기로 가득해질 것이다.

비죽배죽 돋아난 연둣빛 새순들이 이파리를 키워가면, 나날이 푸르름도 더해갈 터이다.

우리네 삶도 날마다 따스한 봄날처럼 늘 싱그러웠으면 좋겠다.

--10년 전 봄날, 수인산에서 남긴 기록을 꺼내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