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2026

[영광 불갑산] 불갑사~연실봉 능선 종주와 하산길 해프닝 (주차·난이도·108계단 정리)


전남광주 영광군 불갑산 불갑사

아침부터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는 불볕더위가 기세를 부렸다. 내리쬐는 햇볕과 도로에서 풍기는 열기를 피해 그늘과 시원한 바람이 있는 영광 불갑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제 고찰 불갑사의 그윽한 고즈넉함부터 호랑이 전설이 서린 덫고개, 아찔한 능선암릉과 108계단을 지나 연실봉 정상에 오른 이야기, 그리고 예상치 못한 하산길 해프닝과 길 위에서 얻은 깨달음까지 산행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본다.

1. 영광 불갑산 산행 핵심 정보 요약

구분주요 내용
산명/위치불갑산(해발 516m) / 전남 영광군 불갑면·묘량면 함평군 해보면 경계
등산 코스불갑사 ➔ 덫고개 ➔ 노적봉 ➔ 법성봉 ➔ 투구봉 ➔ 장군봉 ➔ 노루목 ➔ 연실봉 ➔ 구수재 ➔ (하산길 미로) ➔ 금계리 ➔ 불갑사 원점회귀
지명 유래 및 역사
불갑사(佛甲寺): 백제 침류왕 때 마라난타가 창건한 사찰로, '부처님의 사찰 중 으뜸'이라는 의미를 가짐
덫고개: 농부가 덫을 놓아 호랑이를 잡았다는 전설에서 유래 (박제 호랑이는 목포 유달초 보관 중)
산행 난이도 및 특징
난이도 중: 능선 자체는 완만하고 봉우리 간 거리가 짧으나, 연실봉 직전 108계단 및 암릉 구간 주의 필요
핵심 관전 포인트: 독특한 동향 대웅전 구조, 덫고개 호랑이 동굴, 연실봉 서해 낙조 조망, 108계단과 33계단
하산 및 교통 팁구수재에서 동백골 방향 하산 시 이정표가 모호, 갈림길 지도 확인.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금계리에서 버스로 무장터미널 이동 후 택시 이용 

2. 백제 고찰 불갑사에 들러 마음을 비우다

불갑사는 전남 영광군 불갑산 자락에 들어서 있는 백양사의 말사다. 백제 침류왕 시절 마라난타 스님이 처음 세웠다는 설이 전해지며, 고려 시대 각진국사가 주석하면서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 정도로 크게 번창했던 천년고찰이다.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서면 일반적인 사찰과 다른 독특한 건축 구조에 눈길이 간다. 보통 정면에 문을 내는 것과 달리, 이곳 대웅전은 정면 3칸에 화려한 삼짝 꽃살문을 달아 창문 역할을 하게 하고 문은 동쪽 벽면에 내었다. 불단 또한 서쪽 끝에 배치되어 본존불이 동쪽을 향하고 있는 희귀한 배치를 보인다.

대웅전 뒤뜰로 돌아서면 각진국사비의 익살스럽게 웃는 거북 모양 귀부와 그 위에 앉아 해맑게 미소 짓는 동자승 석상이 마음을 화사하게 해준다. 담장 아래 핀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자유로이 날아갈 준비를 하듯, 산행에 앞서 마음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3. 덫고개의 호랑이 전설과 능선 봉우리들


전남광주 영광군 불갑산 호랑이, 진각국사비

산행은 불갑사 ~ 덫고개 ~ 노적봉 ~ 법성봉 ~ 투구봉 ~ 장군봉 ~ 노루목 ~ 연실봉 ~ 구수재 ~ 동백골 ~ 불갑사로 이어지는 약 4시간 코스로 잡았다. 높이가 516m로 높지 않고 능선이 완만해 큰 부담 없이 걸음을 옮겼다. 무성한 나뭇잎이 햇살을 가려주고 시원한 산바람이 땀을 식혀주어 쾌적하게 덫고개에 다다랐다.

'덫고개'는 과거 농부가 덫을 놓아 야생 호랑이를 포획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호랑이가 서식했다는 자연 동굴과 호랑이 모형이 조성되어 있다. 이때 잡힌 호랑이는 표본 박제되어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보관 중이며, 한국에서 유일하게 실물로 남아있는 야생 호랑이 박제로 알려져 있다.

덫고개를 지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노적봉에 올랐다. 불갑산의 능선길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간격이 300m 안팎으로 촘촘하게 이어져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법성봉, 투구봉, 장군봉을 지나 노루목까지 경쾌한 발걸음으로 능선을 넘었다.

4. 위험한 갈림길, 108계단을 넘어 도착한 연실봉 정상


전남광주 영광군 불갑산 정상 연실봉, 108계단


정상인 연실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위험한 길'과 '안전한 길'로 나뉘는 갈림길을 만났다. 조망과 스릴을 기대하며 위험한 길을 선택했고, 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난간을 설치해 겨우 만든 아찔한 암릉길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가슴이 시원해질 만큼 압도적이었다.

연실봉에 닿기 직전, 마지막 관문인 108계단 앞에 섰다. 숨을 다스리며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마음속 온갖 번뇌와 망상을 하나씩 씻어낸다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08계단을 다 오른 뒤 도리천으로 향하는 33계단을 마저 걸어 올라서야 비로소 번뇌가 사라진 천국의 문처럼 정상부가 열렸다.

해발 516m 연실봉 정상에서는 맑은 날 남쪽으로 광주 무등산이, 서쪽으로는 서해가 아득하게 조망된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으뜸으로 꼽힌다. 막힘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던 중 산꼭대기에서 판매하는 차가운 얼음과자 한 입을 베어 물자 갈증이 단숨에 녹아내렸다.

5. 하산길의 길 잃음과 시골버스에서 얻은 삶의 이치


전남광주 영광군 불갑산

하산을 위해 이정표를 확인하고 구수재를 거쳐 동백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풀숲 길을 한참 헤치고 내려가는 동안 갈림길 이정표에는 오르막과 현 위치만 표기되어 있을 뿐 하산 방향 표시가 모호했다. 내려가다 보면 불갑사가 나오리라 믿고 1시간가량 걸음을 재촉했으나, 스마트폰 앱으로 위치를 확인해보니 불갑사와는 완전히 반대편인 금계리로 내려와 있었다.

도착지인 금계리에서 출발지인 모악리 불갑사 주차장까지는 산을 크게 돌아가야 하는 무려 13km 거리였다. 순간 허탈함과 피로가 밀려왔지만,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생각을 바꾸어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금계리 마을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푸른 논과 저수지가 반짝이는 들판을 지나 무장터미널로 이동한 뒤, 택시를 불러 불갑사 주차장으로 복귀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고단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목표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길을 잃고 먼 길을 돌아오면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마주하고 삶의 이치를 터득했듯, 뜻밖의 변수조차 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뜻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