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완주의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화암사(花岩寺)에 들렀다. 시인 안도현이 "나 혼자 가끔씩 피신하는 곳,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읊조렸을 만큼, 화암사는 신비롭고 수줍은 듯 얼굴을 가린 채 꼭꼭 숨어 있는 절집이다.
화암사로 향하는 길은 자갈이 살포시 깔린 정겨운 흙길로 시작된다.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짙어가는 초록의 싱그러움과 향기로운 숲 내음에 취해 걷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면서도, 아름다운 숲길이 주는 도취감 덕에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 완주 화암사 탐방 코스 & 핵심 정보 요약
| 구분 | 주요 내용 |
| 위치 | 전북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자락 |
| 가는 길 | 주차장➔숲길 오솔길➔계곡 나무다리➔연쇄 폭포➔철제 계단➔화암사 |
| 소요 시간 | 약 30분 소요 / 평탄한 숲길과 계곡 비탈을 오르는 난이도 하(易) 코스 |
| 주요 문화재 & 볼거리 | 완주 화암사 극락전 (국보): 국내 유일의 하앙식(下昻式) 목조건축물 완주 화암사 우화루 (보물): '꽃비가 내리는 누각' 미음(ㅁ) 자 중정 구조: 우화루, 극락전, 적묵당 |
| 관람 팁 | 100여 개의 철제 계단 뒤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사찰 전경이 관전 포인트이며, 적묵당 툇마루에 앉아 고요함을 즐기기에 최적 |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길: 숲길과 계곡, 그리고 하늘 폭포
숲길을 지나 좁은 산길로 들어서자 계곡 따라 흐르는 졸졸거리는 물소리와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계곡을 타고 오르다 자그마한 나무다리를 건너니 작은 규모에도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가 반겨주었다. 골이 깊어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모양이다.
초입의 두 폭포도 운치 있었지만, 세 번째 만난 폭포는 높은 암벽에서 수직으로 시원하게 내리꽂히며 상쾌한 청량감을 선사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깊은 골짜기와 청정한 물소리는 마치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 사이로 100개가 넘는 지그재그 철제 계단이 놓여 있었다. 수려한 자연 속 철제 구조물이 다소 생경하게 다가오지만, 청량한 폭포 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 보면 현실의 세계에서 선경(仙境)의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처럼 느껴진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는 또 하나의 폭포가 하늘과 맞닿아 떨어졌다. 나무와 햇빛, 폭포수와 이름 모를 들꽃들로 마음의 먼지를 깨끗이 씻어낸 뒤에야 비로소 화암사 전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민낯의 소박함: 우화루의 고풍스러운 미학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화암사는 화려하게 단청을 칠하지 않은, 화장기 없는 순수한 민낯이다. 꾸밈없이 자연에 스며든 수더분하고 참신한 모습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사찰 입구에는 '꽃비가 내린다'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보물 우화루(雨花樓)가 꼿꼿하게 서 있다. 통통하면서도 미끈하게 잘 빠진 기둥 다리로 단정하게 서 있는 모습이 미소를 자아냈다.
우화루 주변 가지런한 길목에는 은방울꽃, 모란, 현호색, 금낭화, 그리고 하얗고 분홍빛을 띤 철쭉들이 가지런히 안겨 벌과 나비를 부르고 있었다. 누각 아래 통로는 정교하게 돌을 쌓아 보존해 두었고, 약간은 세련된 깍쟁이 같은 옆문으로 들어서니 잘그랑잘그랑 은은한 풍경소리가 정겹다.
우화루의 둥근 기둥에는 온갖 바다 생물을 제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목어와 큼지막한 목탁이 걸려 있어 소리 없는 울림을 전했다. 누각 창을 통해 조각조각 나누어진 바깥 풍경은 마치 액자 속에 담긴 한 폭의 그림 같고, 매끄러운 마룻장 위에는 노란 송홧가루와 꽃가루가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국내 유일의 하앙식 건축 '국보 극락전'과 적묵당에서의 휴식
우화루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니 사찰 전각들이 미음(ㅁ) 자 형태로 아담하고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우화루 맞은편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하앙식(下昻式) 구조'로 건립되어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이 단정하게 보였다. 하앙식 구조란 처마를 길게 빼내기 위해 들보 아래 또 하나의 부재를 덧댄 독특한 기법이다. 화려한 장식 없이도 고아하고 품위 있게 나이 든 노인처럼 깊은 기품을 내뿜었다.
극락전과 마주한 적묵당 마루에 조용히 앉아 몸과 마음을 내려놓았다. 대둔산 산행부터 이어진 노곤한 심신의 피로가 마루의 온기와 고요함 속으로 거짓말처럼 풀어져 내린다. 선경에 들었는지 구름 위에 누웠는지 모를 편안함 속에, 한 마리 학이 되어 온전히 상념을 비워내고 거닐다 내려왔다.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순박하게 들어앉은 화암사의 고요함과 우화루 아래를 지나던 청량한 바람은, 번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내 가슴속에 여전히 따뜻하고 맑은 샘물로 남아있다.



